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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낭만의 베트남, 구순구개열 의료봉사

Relay Essay 제2585번째

퇴근길 차 안에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저 최진영인데요, 회의를 했는데 이번 베트남에 장훈 선생님 같이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오래전부터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구순구개열 의료봉사에 같이 가자는 전화를 받았다. 그것도 우리나라 최고의 수술팀과 함께. 기뻐서 운전 중에 차 안에서 소리를 질렀다. 코로나와 함께했던 전공의 시절 모든 해외봉사와 해외학회가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대체되어 한번도 가보질 못했었다.

 

나는 지금 구강악안면외과 수련을 마치고 병무청에서 병역판정전담의사로 대체복무 중이다. 신체검사를 통해 병역 급수 판정을 하는 것이 내 역할이다. 전공의 때 유별난 하고잡이였던 내가 3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칼을 못잡게 된 것이다. 3년을 의미있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구강악안면외과 영역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구순구개열 의료봉사에 지원했다. 개인적으로 의료봉사를 가기로 최종 결정하기까지 쉽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봉사 기간이 둘째 아이 출산 직후였기 때문에 아빠로서의 역할을 잠시 놓아야 한다는 것이 가족에게 미안했다. 고민을 하는 찰나 “갔다와, 가서 어른이 돼서 돌아와” 라는 아내의 말에 베트남에 가기로 결심했다. 아내에게 고맙다. 역시 엄마는 위대하다.

 

내가 참여하게된 일웅구순구개열 의료봉사회는 1968년부터 약 40년간 1000명 이상의 구순구개열 환자를 대상으로 의료봉사활동을 펴오신 민병일 서울치대 명예교수님의 호 일웅(一雄)을 따서 설립한 의료봉사회로서, 올해 베트남에서만 27회째 진행되는 유서 깊은 봉사회이다. 드디어 출발하는 날, 부산에서 인천공항행 버스를 탈 때부터 설렘과 걱정이 가득했다. ‘가서 내 역할은 뭘까? 수술팀 멤버를 보니 내가 낄 자리가 없는데? 설마 갑자기 나보고 수술하라고 하진 않겠지? 가서 인턴처럼 임상 사진이나 찍으면 되려나? 솔직히 전문의 시험공부 할 때도 구순구개열 정확히 이해 못했는데... 나만 타대생인데 가서 잘 못하면 창피한데...’ 온갖 생각이 머리에 뒤엉켰다. 대체복무 시작하고 1년 반 동안 니들홀더조차 한번 잡아본적이 없어서 사실 몇 주 전에 수처연습키트를 구매하여 혼자 연습도 했다. 오랜만에 교과서를 펼쳐 구순구개열 공부도 했지만 다시 봐도 구순구개열은 어려웠다.

 

베트남에 도착하여 호치민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빈증성 종합병원으로 향했다. 외래팀과 수술방팀, 두 팀으로 나누어 술전준비를 했다. 외래팀은 총 31명의 환자를 예진하여 그중 23명의 수술계획을 세웠고, 나는 수술방팀으로 한국에서 가져온 수술용품들을 셋팅하는 것을 도왔다. 한국에서 의료용품을 무려 박스 13개에 포장하여 챙겨오셨다. ‘아니 이렇게까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수간호사이신 노희정 선생님과 일웅봉사회와 종신계약(?)을 맺으신 마취과 간호사 김인하 선생님 주도하에 수술방 셋팅이 척척 이루어졌다. 나는 인턴마냥 옆에서 쭈뼛쭈뼛 서서 도와드리려 했지만 큰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었다.

 

일주일간의 수술계획표와 함께 수술팀도 짜여졌다. 일주일간 총 23명의 환자를 수술하기로했고, 수술방은 두 개의 방이 열렸다. 나는 전임의 맹지연 선생님과 함께 배정되었다. 내 역할은 어떻게 될까 궁금했었는데 나는 2nd assist와 1st assist를 번갈아가면서 했다. 오랜만에 하다보니 어색한 부분도 많았지만 신기하게도 또 하다보니 몸이 기억하고 있더라.

 

생후 11개월 기저귀를 차고 들어온 아가야부터 최고령 35세 환자까지 다양한 구순구개열 환자의 수술을 진행했다. 양측성구순열부터 Tessier cleft까지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케이스를 원없이 볼 수 있었고 특히 국가대표급 교수님들의 수술을 보면서 마스크 속에서 혼잣말로 ‘우와, 이게 되네’하며 감탄하면서 봤다. 구순구개열 수술은 정말 매력적이다. 특별히 화려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절개, 박리, 봉합이라는 외과의의 기본기만을 가지고 하나의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과 같다. 3차원적인 형태에 덧붙여 향후 환자의 성장과정에 따른 형태 변화까지 4차원적인 고려를 해야하는, 술자의 경험이 많이 필요한 수술이다. 집도하시는 교수님을 보고있노라면 마치 수술모라는 갓을 쓰고, 메스라는 붓을 쥐고 한땀한땀 글을 써내려 가는 조선시대 장인 같았다.

 

옵저베이션만 해도 영광이였지만, 감사하게도 기회를 많이 주셔서 결국 일주일 내내 필드에 들어갔다. 이걸 여기에선 소위 ‘풀땡’(풀로 땡긴다, 하루종일 수술방에 들어간다는 말)이라고 한다나.. 전공의 시절 몸으로 때우는건 자신있던 나였지만 솔직히 3, 4일차에 들어서니 체력이 조금 달리긴 했다. 스크럽 선생님은 베트남 현지 의료인분들께서 들어오셨는데 영어가 전혀 되지않아 처음에는 의사소통이 잘 안되었지만 나중에는 우리가 먼저 베트남어로 ‘께오(가위), 자오(칼), 갭낌(needle holder), 각으엇(wet gauze)’라고 기구콜을 하며 일주일간의 수술이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일웅 봉사회의 오랜 역사를 증명하듯 베트남 현지에서는 일웅봉사회가 오기를 1년 내내 기다리는 환자들이 많다고 한다. 특히 서너번의 단계적인 수술이 필요한 구순구개열의 특성상 한 환자가 일웅봉사회의 한 교수님에게 두 번, 세 번째 수술받으러 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엔 베트남 일웅봉사회 최초로 베트남-한국 의료진 합동 심포지움도 진행되었다. 빈증성종합병원의 세미나실에 일웅팀과 수 십명의 베트남 의료진이 참석했고, 최진영 교수님의 악교정수술, 서병무 교수님의 구순열, 안강민 교수님의 구강암, 양훈주 교수님의 임플란트 강의가 진행되었다. 이는 베트남 현지에 생중계 되었고 다양한 질문과 답변들이 통역 선생님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수술 중간에 병동환자 드레싱도 매일 다녀왔다. 비교적 깔끔했던 수술방과는 달리, 소아병동 시설은 열악했다. 환자들은 환자복조차 없이 각자 개인 잠옷을 입고 있었고 보호자는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있었다. 아무도 마스크를 끼고 있지 않았다. 병실은 감염관리 체계가 전혀 잡혀있지 않은 듯 했다. 혹시나 수술부위에 염증이 생길까 걱정이 되었다.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정말 잘 잡혀있구나 다시 한번 느꼈다.

 

어느덧 베트남의 마지막 날이 되었고 일주일간 수술했던 모든 환자들을 드레싱하며 선물도 나눠주고 기념사진도 촬영하며 9박 10일간의 봉사가 마무리되었다. 마지막 드레싱을 받으며 ‘저 다음 수술은 언제 해주실거예요?’라며 해맑게 웃던 아이, 목놓아 울다가 선물 받고나서 씨익 웃음 짓던 아이, 환영만찬회까지 열어주시며 환대해주셨던 빈증성 병원 의료진분들, 열흘 내내 동행하면서 도와주셨던 통역선생님들 그리고 휴가 반납하며 개인 연차쓰고 오신 16명의 일웅팀, 마지막으로 매일 아침 사이공 강변 뷰와 함께 먹었던 쌀국수까지, 열정과 낭만으로 가득했던 베트남이었다. 함께해서 영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