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쏠림의 해법

임철중 칼럼

용궁을 다녀왔다. 숨차고 가래 끓는 증상이 롱코비드 기관지염 때문인가 해서, 진해거담제로 3개월을 버티던 중이었다. 정기검진 받고 오던 중 호흡곤란으로 서울역 계단에서 쓰러져, 휠체어-KTX-휠체어-119 순서로 충남대병원 응급실에 이르렀다.


호흡기 걸고 40시간, 내과중환자실 사흘, 폐부종의 원인으로 의심되는 심장 약 후유증 문제 분석을 위하여 심장중환자실 나흘, 도합 9일 만에 퇴원하였다. 전에는 하나뿐이던 중환자실(Intensive Care Unit)은 응급·심장·신경의 3개 ICU로 진화되어 있었고, 교수·간호사 모두 과로로 탈진(Burnout) 상태였다. 필자가 충남대 병원에 근무하던 70년대 말 이래 전문과 숫자는 3배가 늘고 세부전공이 분화하여, 영상의학과·내과 수술 또는 시술(施術)이라는 다양한 진료형태가 생겨나 일반화 하였다. 


치의신보에 ‘피안성과 정재영’이라는 A4 5장 분량의 칼럼을 쓴 것이 2010년 4월인데 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의료대란이 국가적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칼럼 내용은 ‘통합치과’ 인정을 촉구하는 목적이었지만, 의료계 인기 과가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에서 정신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로 확대되는 시점에, 생명을 다루는 필수 의료가 후진하는 현상을 바로잡자는 의도가 본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0여 년간, ‘내외산소’(Essential Medicine)는 위축되고, 복지의료(Well-being Medicine)는 더욱 확장되면서, 의료대란이 폭발한 것이다. 정책당국은 수많은 경고를 묵살 내지 방관하다가, 의료계가 코로나의 값비싼 희생으로 심신의 탈진과 경영 붕괴라는 막다른 골목에 이른 상황에서, 위로는커녕 고질적인 ‘선거득표용 의사 때리기(Doctor Bashing)’로 오해받기 딱 좋은, 의대정원 ‘2천명 확대’라는 ‘폭탄투하’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것이 의료계 반발의 핵심이다.


문제는 의사들의 생명을 다투는 필수의료 기피와 비교적 한가로운 고급의 웰빙 내지 미용의료에 폭발적 몰림, 서울과 지방 간 의료의 엄청난 수준격차, 두 가지로 집약된다. 둘 다 심각한 ‘쏠림’ 현상이다. 그 원인을 따져보자. 고교 동기 I군은 5대병원인 S병원 설립과 초기 운영 책임자였는데, 당시 그룹 총수는 연 5백억까지 적자를 내더라도 최고의 병원만 만들어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제는 기업으로서 당연히 흑자경영을 요구한다. 앞서 얘기한 의료의 발전, 즉 전문과의 폭발적인 확대와 세부전공, 모두가 고급 두뇌의 엄청난 수련기간 연장을 의미한다. 워라벨을 중시하는 “내가요? 이 걸요? 왜요?” 세태와 정면충돌 한다. 인건비의 급상승은 물론 NZ세대에게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요구다. 그뿐이 아니다. 진료의 첨단화는 당연히 천문학적인 고가의 의료장비를 요하고,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장비의 수명은(Life Cycle) 지극히 짧다. 이점은 서울·지방 격차의 주원인이기도 하다. 정책당국은 이 부문에 얼마나 지원을 했는가? 초대기업도 견디기 힘든 비용을 전액 의사 개인 주머니와 의료기관이 투자해왔다. 필수의료는 대한민국 최대 적폐인 전방위적인 폭행-고소-고발-소송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데 반하여, 웰빙 의료는 NZ세대를 필두로 전 국민의 수요(Needs)에 부응하여 번창 일로에 있다. 결국은 지방소멸 서울팽창, 특히 학군의 제왕 강남 폭발성장과 세태 변화의 연장 선상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쏠림현상을 막을 대책이 우선’인데, 정원 2천명 확대라는 ‘인해전술’을 뜬금없이 내밀어 집토끼까지 내모는 돌대가리 선거참모는 누구인가? 의사라는 집토끼가 등을 돌리면, 진료공백에 시달리는 국민들도 차례로 등을 돌린다. 그리고 인구변화와 부동산 폭등의 쏠림을 막아낸 성공 사례를 아직은 보여준 적이 없다.

 

작년 하늘나라로 가신 형님은 1953년 서울법대 진학을 원했으나, 선친의 권고로 서울의대로 갔다. 선친의 주장은, “난리 통에도 의사는 살려두더라”였다. 이념에 절은 빨갱이 군대도 의사는 필요하니까. 그래서 의사는 대부분 중도 내지 보수다.


이런 ‘집토끼들’마저 적으로 내치고 있으니. 의사 한 사람 만들기도 어렵지만 의대 교수 한 사람이라면 차원이 아주 달라진다. 사표를 내고 전화 한 통이면 한국 의대교수를 모셔갈 외국 대학과 병원이 널렸다. 전두환 대통령조차 3년제 로스쿨을 백-2백-5백-천 명 등 점진적으로 늘렸다. 월남전 확전으로 군인 50만명이 늘고 군의관 수요가 커지자, 미국 정부는 의·치대 정원 한 명 당 $천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외국 의대 졸업생 면허를 완화했다. 60년대 말 70년대 초 한국의사 대량 이민이 그렇게 이루어졌다. 전쟁 종식 후 해결도 비교적 쉬웠다. 대부분 계약직인 교수는 시간이 해결하고, 보조금은 끊으면 끝이었다. 대한민국은 아주 다르다. 난데없이 2천명의 인해전술은 그 자체로 희극이지만, 정규직 선호가 인구 감소와 중첩되면, 전진보다 후퇴가 더 끔찍한 비극을 낳을 것이다. 좀 더 신중하고 점진적인 접근을 촉구한다.


폐부종의 원인이 심장 약 장기복용인 경우처럼, 전방위적인 쏠림현상과 연계하여 거시적인 해법을 찾는 지혜가 아쉽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