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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칼럼, 차 한 잔의 사색
우리는 지성인인가?

진료를 하다 보면 문득 “이제는 나도 한가지 분야를 선택한 전문 직업인으로 살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친구들과도 직업에 관해 대화를 나누다 보면 다들 이제는 지금 하는 일 외에는 밥벌이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아는 것도 별로 없다고 자조 섞인 목소리로 얘기한다. 왜 우리는 한 분야만 배워서 먹고 사는 것일까 ? 근대의 급속한 산업 혁명은 분업화된 여러 직종을 만들었고, 분업화된 직종은 소위 세분화와 전문화를 고착시켰다. 오늘날은 자신이 전공으로 삼는 일 외에는 몰라도 흉이 되지 않고 구태여 알 필요도 없다는 인식이 우리들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 한국의 풍토에서는 각 전문 분야의 텃세가 아주 심해서 전문으로 해 오던 일을 중도에 바꾸거나 그 일 외의 다른 일을 도모하면 실력이 없거나 특별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이 규태는 <한국인의 의식구조>에서 전문직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잘 정리하였다. 즉, 우리의 의식은 가변적이며 하나 이상의 복수여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고 여기는 서양인의 그것과 큰 대조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는 또 우리 민족이 텃세에 얽매여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외길 인생을 살기 때문에 여러 분야의 전문지식이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는 위대한 발상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하였다. 예를 들어 의사가 그림을 잘 그리거나 물리학자가 악기를 잘 다룬다고 하면, 대개의 한국인들은 그들이 전문인으로서의 실력이 모자라거나 전문직에 재미를 못 느끼는 엉뚱한 사람일 것이라고 치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명문 대학의 영문과를 졸업한 한 친구가 자신이 수학에 재능과 관심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수학과로 대학원을 지망하여 탁월한 성적으로 학위를 마치고 졸업하였다. 그러나 학위를 다 마치고 대학에서 수학자로서 연구를 계속하고자 하였을 때 중간에 전공을 바꾸었다는 이유로 그는 자리를 얻지 못하고 결국 수학에 대한 열정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사회의 전문 의식에 대한 단면을 드러낸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원래 사람의 지식은 일체화되어 있었고 그것이 이상적이었다. 고대나 중세의 지성인이라 함은 수학만 잘 하는 사람, 물리학만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수학이나 물리학뿐 아니라 철학과 의학, 그림과 음악 같은 예술 분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지식과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예컨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내면에는 비행기의 설계도와 인체 해부도, 모나리자의 미소까지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통합되어 있었고, 어쩌면 그런 모습이 인류가 지향하는 지성인의 전형인지도 모른다. 역사적으로 인류의 지성사를 이끈 두 기둥은 철학과 신학이며 그로부터 많은 학문이 파생되었다. 현대에 있어서도 당대의 위대한 지성인들은 전문 분야에서의 뛰어난 업적뿐 아니라 인류의 지성의 근원인 철학과 신학에까지 다양하게 접근하는 능력을 지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잘 융화된 지성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가정과 직장에서 가족들과 조직을 ‘경영"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전문 지식을 숙달되게 응용해야 하는 것은 기본인데다가 사람들을 관리하며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때에 여러 부문에서 균형된 감각을 지니고 매사를 처리해야 하는 리더의 입장이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 그가 이끌어 가는 조직의 모습은 그 사람이 지닌 인격과 지성의 표출이 된다. 그의 전문 지식과 함께 그가 지닌 성격, 철학적 소양, 독서를 통하여 만난 위대한 영혼들과의 교류, 경제 감각, 예술관, 교육관 등이 조직의 큰 결정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미국에서도 능력 있고 여러 면에서 균형 잡힌 사람을 표현할 때 ‘조직화되고 체계화된(organized)"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고 한다. 내면에 조화로운 인격과 지성을 지닌 사람은 온전하고 바른 방향으로 조직과 사람들을 이끌 것이다. 왜곡되고 뒤틀린 자아와 인격을 지닌 사람이 전문 지식만으로 만드는 조직의 모습은 그의 내면처럼 건조하고 황폐해 지는 것을 우리는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사회는 총체적이고 일체화된 지성인을 요구한다. 이 사회가 병들었다면 아마도 편견과 텃세에 찌들어 있고 자신의 분야나 신조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외곬수적 성향의 ‘조화롭지 못한" 인격과 지성을 지닌 사람들이 사회를 이끌고 있고, 그런 모습의 사람이 되어야 이 사회에서 성공하고 존경을 받는 지성인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과연 어떤 모습의 인격과 지성으로 이 사회에 서 있는지 다시금 생각해 볼 일이다. 문화복지위원회 문·화·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