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단연 산수유의 계절이다. 물론 봄의 여왕인 벚꽃, 사군자의 매화, 동요 속의 개나리 등 전통적인 봄의 강자(强者)들이 있음에도 길고 추운 겨울 후 갑자기 피어있는 노란 산수유꽃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마치 고대하던 올림픽 첫 금메달처럼 너무 반가워서 탄성이 나올 지경이다. 이처럼 산수유는 봄을 가장 빨리 알리는 나무다. 도시 곳곳에 노란 산수유 꽃이 필 때쯤이면 겨울은 완전히 지나갔고 이제부터는 봄을 즐기면 된다.
산수유는 학창 시절 김종길의 시(詩) 성탄제(聖誕祭)에 등장하는 우리에게 낯익은 나무로 아파트단지에도 학교에도 도로에도 곳곳에 심겨 있는데 그동안은 몰랐다가 봄이 시작되면 노랗게 사방에 존재감을 과시하고 또 가을이 되면 나뭇가지 곳곳에 이 작고 붉은 열매들이 일제히 나타나 겨울까지 남아 새들의 양식이 되어주니 실제로 한 해가 산수유로 시작해서 산수유로 끝난다고 하면 너무 과장된 말일까.
산수유는 높이 5~7m로 자라는 소교목으로 수피(樹皮)는 회갈색으로 심하게 벗겨지며 잎은 층층나뭇과의 전형적인 특징인 잎맥이 잎끝까지 연결되는 나란히맥을 보인다. 산수유는 보통 3월이면 꽃망울을 터트리는데 노란 꽃은 잎보다 먼저 피어나서 나무 전체를 노란색으로 덮는다. 매년 전남 구례군에는 산수유축제가 열리며 산동면은 산수유
마을이라 불리는데 구례의 계천리의 산수유(보호수 15-9-8-11)는 키 7m 둘레 480cm 나이 1,000년으로 추정된다. 열매는 10월경 붉게 익으며 타원형의 손톱만한 크기로 촘촘히 많이 달리는 데 예전에 이 열매를 팔아 자식 대학을 보낸다고 하여 “대학나무”라고 불리기도 했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 산수유는 “정력을 보강하고 뼈를 보호해 주며 소변이 잦은 것을 낫게 한다”라고 했고 『세종실록』(世宗實錄)과 『산림경제』(山林經濟)에 산수유씨를 빼고 열매를 약재로 썼다는 기록이 있다. 한방에서는 강음(强陰), 신정(腎精)과 신기(腎氣)보강 등의 효능이 있다고 하며 두통, 이명(耳鳴), 해수병, 해열, 월경과다 등에 약재로 쓰이며 식은땀, 야뇨증 등의 민간요법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산수유의 고향은 중국 중서부로 알려져 있는데 삼국시대에 들어온 것으로 보이며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신라 제48대 경문왕의 귀가 당나귀 귀임을 안 모자 장인이 대나무 숲속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고 외쳤더니 바람 불 때마다 그 소리가 들려 경문왕이 대나무를 베어버리고 산수유를 심었다는 일화가 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 1,100년 전에 산수유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산수유는 봄에는 노란 꽃으로 기쁨을 주고 가을엔 붉은 열매로 풍성함을 더하며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게다가 키도 낮아 쉽게 꽃과 열매를 즐길 수도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나무인가.
마지막으로 예전 학창 시절 교과서에 실렸던 김종길(1926~2017)의 시 『성탄제』(聖誕祭)』를 소개하려 한다.
오늘은 한번 집 앞의 산수유꽃 향기 맡으며 추억의 시 한 편 음미해 보면 어떨까요.
성탄제 (聖誕祭)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에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ㅡ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