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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이

이미연 칼럼

날씨가 삽시간에 더워졌다. 며칠 전 시골의 어머니께서 인편에 나물을 보내주셨는데, 잠시 집을 비워야 해서 당장 먹지 못하고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집에 돌아와 혹시나 하고 냉장고를 들여다보니, 정성스레 싸 주신 나물이 이미 물러 향이 변해버렸다. 냉장고 안에서도 굳세게 자란 미생물 때문이다. 외부 기온이 올라가면 냉장고 안이라도 영향을 받는 법인데, 그간 서늘했던 터라 온도 셋팅을 낮춰 놓지 못한 탓도 있다. 그렇지만 열흘도 더 전에 시골에서 직접 가져와서 냉장고에 넣어둔 열무김치는 알맞게 익어 새콤한 냄새를 내뿜고 있었다. 같은 냉장고 안에서도 사정이 다름은 나물은 부패하고 열무김치는 발효되었기 때문이다.

 

발효와 부패는 둘 다 미생물에 의해 유기물이 작은 분자로 분해되는 작용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썩는 것이다. 썩는 작용은 물질의 성상을 바꾸고 나쁜 냄새나 유독성 물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음식이라면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것이 부패(腐敗)이다. 부패를 언중이 어찌나 나쁘게 생각하는지, 국어사전에서 부패를 찾으면 유기물의 분해보다 정치, 사상, 의식의 타락이라는 뜻이 앞서 나오고 부정(不正)을 동반해 부정부패라는 성어가 먼저 검색된다.

 

발효(醱酵)는 조금 다르다. 좁은 의미로는 산소를 최종전자공여체로 사용하는 전자전달계를 사용하지 않고 혐기성 상태에서 미생물이 탄수화물을 분해하여 내는 과정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인 의미로는 유기물이 미생물에 의해 분해로써 이를 통해 알코올류, 유기산류, 이산화탄소 등을 내는 작용이라고 설명된다. 즉, 똑같이 미생물에 의한 분해가 되는 것이되, 그 결과물이 사람에게 향기롭고 이로우면 발효라고 부르고, 사람에게 기껍지 못하고 해로우면 부패라고 부른다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철저하게 인간 중심적인 기준이라서 온당하지 못한 듯 보이나, 사실 우리 세상에서 대부분의 사고판단이 그러하다. 앞서 예를 든 균만 하여도 사람에게 이로운 유익균과 질병이나 부패를 일으키는 유해균으로 나눈다. 벌레를 익충과 해충으로 나누는 것도 어디까지나 사람의 입장이다. 오늘날 환경을 보호하자는 목소리가 드높지만, 그조차 지구환경에 살고 있는 다른 생명체들을 존중하고 보호하겠다는 의지보다 인간의 지속가능한 삶을 보장하기 위함이 더 크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북극곰이나 시베리아 호랑이, 향유고래와 같이 사람들이 애정과 관심을 갖고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하여 보호하려는 인기종(star species) 뿐만 아니라, 당장은 그 쓸모를 알 수 없는 영월동굴 속 장님 톡톡이나 서해안 갯벌의 규조류 같은 작은 생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물종자원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조차, 그것이 우리에게 이롭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연생태계를 구성하는 생물들이 현재 우리 인류가 적응하고 살고 있는 환경의 항상성을 유지시키고 우리가 당장 채집하여 먹을 수 있는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음은 물론, 그 생물들의 고유 생리활성물질이나 유전자가 장차 인간에게 치료제나 해독약으로 이롭게 쓰일 날이 올지도 모른다. 마치 발열 내독소 평가시험에 있어 아직 투구게 혈청시험(LAL test)을 온전히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처럼, 유일(唯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미리 사라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생물종자원 보존 노력에 설득력을 더해 주기도 한다.

결국 우리 세상에서는 우리에게 가치 있느냐가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치판단을 내리기에 앞서 ‘우리’의 범주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공자님은 대학편에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말씀했다. 큰 일을 하기에 앞서 자신부터 먼저 솔선수범하라는 뜻이지만, 우리의 범위를 생각하자면 ‘나’로부터 출발해 궁극적으로는 천하 모두를 아우르는 것을 이미 전제한 것이 아닌가.

 

국가의 수반을 선발하는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 대한치과의사협회는 각 대선 캠프의 공약결정에서 치과의사로서 기여할 수 있는 바람직한 보건 정책을 제시할 중책을 맡았다. 우리 회원은 전체 유권자 수에 비교하여 목소리를 내기에 작은 숫자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구강 전문가이며, 전문가로서 제시하는 구강보건대책이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 되며 향기로운 결과물로 느껴질 때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더 큰 ‘우리’의 목소리를 힘입어 바른 정책을 관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치과 회원이라는 작은 우리에게도 향기로이 여겨져야 함은 물론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