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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
눈 높이 부모
<이정우 목사·기쁨의 교회 담임목사>

어린이 날 오후, 물론 토요일이 목회자에게는 제일 정신없는 날이지만, 일년에 한 번 돌아오는 날을 그냥 넘기자니 가시처럼 목에 걸렸다. 시침이 4시를 지날 무렵 긴급 가족회의를 열었다. 남은 시간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보낼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황급히 시동을 걸었다. 집을 빠져나간 차는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을 도로에서 보내야만 했다. 20분이면 충분한 거리를 왕복하는데 두 세 시간이나 썼다. 거리는 그야말로 차량의 행렬이었다. 있는 차는 다 거리로 나온 것 같았다. 고생만 죽자고 했다.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고생만 했는데도 아이들은 재잘거리며 즐거워했다. 예외 없이 아이들로 빼곡한 차들을 보면서 어린 시절 생각이 났다. 몇 살 때였던가. 어린이 날이라며 어머니께서 건네주신 뽀빠이 라면땅을 들고 감격하던 일이 떠올랐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란 말이 다 나온다. 그러고 보면 참 좋은 세상이다. 어느 사회학자가 말했던가. 지난 20세기는 어린이를 재발견한 세기였다고. 그는 18세기는 민중을 발견한 세기였고, 19세기는 여성을 발견한 세기였으며, 20세기는 어린이를 발견한 세기였다고 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20세기를 넘긴 지금, 가정들마다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유난스럽지 않은가. 그런데 납득하기 어려운 아이러니가 있다. 이렇게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극진한데도, 자라면서 부모와의 사이는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모들이 배려가 이렇게 지극한데도 자라면서 탈선과 일탈은 통제할 수 없을 지경이라는 현실이다. 왜 그럴까. TV에서 본 한 아이의 볼멘 소리가 생각난다. “부모님은 절 몰라요. 절대 이해하지 못해요. 말해봤자 소용없어요. 걸핏하면 잔소리나 하고….” 처음엔 버르장머리없는 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곰곰이 되씹어보니 그 놈 말이 일리가 있어 보인다. 이해한다(understand)는 말이, 어른들로 말하면, 어른의 생각에서 아래로(under) 내려가서 아이들의 입장에 서는(stand) 것이 아닌가. 아래로(under) 내려가서 아이들의 눈높이에 서(stand) 주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그 놈이 ‘이해한다’는 말은 제대로 쓴 것이다. 결국 부모가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어른 입장에서 잔소리만 하니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예수님께 감동하는 큰 이유가 있다. 그 중의 하나는 그 분이 인생을 참으로 이해하신 분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그런 분이 하늘의 영광 다 버리고 아래로(under) 내려오셔서 연약한 인생의 입장에 서(stand)주셨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 사랑이 늘 나를 감동시킨다. 부모의 사랑도 이렇게 나타나야 하지 않을까. 미국에 유명한 피바디 교육대학이 있다. 이 대학을 일으킨 피바디 선생의 퍽 감명깊은 일화가 있다. 그가 초등학교 2학년 교사로 있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아이들에게 박물관 유물을 구경시켜 주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잘 설명해 주기 위해서 사전 답사를 했다. 그런데 그 박물관을 지키던 수위는 하루종일 앉은뱅이로 기어다니며 메모를 하고 있는 피바디 선생을 보았다. 처음엔 정말 앉은뱅이인줄 알았다. 그런데 나갈 때 보니까 벌떡 일어서서 걸어 나가지 않는가. 깜짝 놀란 수위는 “저는 들어오실 때 앉은뱅이인 줄 알았는데 성한 사람이었군요. 왜 그렇게 무릎으로 기어서 돌아다니십니까? 무릎으로 기어다니면서 보시는 분은 처음입니다.” 하고 물었다. 그러자 선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일 저는 우리 반 아이들과 유물을 구경하러 옵니다. 그런데 다 어린이예요. 키가 다 작지요. 그래서 우리 반 아이들이 바라보는 그 눈 높이에서 보아 두었다가 아이들의 시각에서 설명해 주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좋은 선생이 되는 것보다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더 많이 무릎으로 기어다녀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