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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
내 안의 두 모델
<이정우 목사·기쁨의 교회 담임목사>

오늘 스티커를 끊기고야 말았다. 불법주차 때문이다. 잠깐이면 되겠다 싶어 주차해 놓고 일보고 나와보니 앞 유리창에 빨간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우리교회당 건물 주위는 그야말로 매일 주차 난리다. 음식점을 비롯한 상가들이 즐비해 있고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라서 항상 주차할 공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종종 주위를 몇 바퀴씩 돌곤 한다. 주차공간을 찾기 위해서이다. 오늘도 그랬다. 주차할 곳을 찾아보려고 이리저리 틈새를 노려보았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결국 맘이 급해졌고 잠깐이면 되겠지 하고 대로변에 주차를 했는데 결국 덜미를 잡히고야 만 것이다. 4만원 짜리를 끊기고 나니까 영 기분이 아니었다. 불쾌하기도 하고 여간 아깝지가 않았다. 솔직히, 재수 없다는 생각도 들고 또 여지없이 딱지를 붙여대는 주차 관리요원들이 밉기도 했다. 그 동안 운전을 할 때나 도보 중에 교통신호를 착실히 지키려고 꽤나 노력했던지라 맘속에 괜한 심통이 나기도 했다. 순간적으로 맘속에 짜증이 가득했다. 그 때였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갑자기 한 어린아이가 옆에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목사님’이라는 호칭에 깜짝 놀랐지만, 난 순간적으로 표정을 바꾸었다. 그리고 늘 그러하듯이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래 너도 안녕하지?... 그 파란색 티셔츠가 참 잘 어울리는구나.” 기분이 한껏 부풀어진 이 아이는 한번 더 목례를 한 뒤 즐겁게 깡총대며 뛰어갔다. 아이를 보내놓고 차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엔진소리보다 더 크게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 때문에 나는 브레이크 페달을 밟은 채 한참을 괴로워했다. 방금 전에 보여주었던 도저히 조화될 수 없는 나의 두 가지 모습 때문이었다. 불법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분노하고 남을 미워하다가도, 순간적으로 표정을 바꾸어서 어린아이를 향해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도무지 용납될 수 없는 이중성 때문이다. 내 안에 있는 이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네오나르도 다빈치로 기억된다. 그가 각고 끝에 모델을 정하고 예수님의 초상화를 그리는 데 성공했다. 그로부터 십 수년의 세월이 지난 후 그는 이번에는 예수를 판 가룟 유다를 그리고 싶었다. 그리고 가룟 유다의 캐릭터를 상상했다. 가룟 유다 그 사람이야말로 마귀의 얼굴 그대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적당한 모델을 찾는 일이었다. 가룟 유다의 모델이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거니와 그런 캐릭터를 가진 인물을 찾을 수도 없었다. 생각다 못한 이 화가는 교도소를 살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가룟 유다가 될 만한 얼굴은 죄를 지은 흉악범 중에 있을 것이고 그런 사람은 교도소에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 감방 저 감방을 간수의 안내로 기웃거리던 이 화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그리고 무릎을 쳤다. 살기 등등한 두 눈빛, 깡마르고 고뇌에 찬 얼굴...... 그가 찾던 유다의 모습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화가는 이 죄수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그리려는 유다의 모델이 되어 줄 수 있겠소?” 물끄러미 화가를 바라보던 이 죄수는 한참만에 입을 열더니, “화가 선생, 절 몰라보시겠소? 저를 자세히 보십시오.” 화가는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럴 수가 있을까하고 자기 귀와 눈을 의심했다. 그는 얼마 전에 예수님의 초상화를 그릴 때의 바로 그 모델이었던 것이다. 내 안에 있는 두 얼굴을 본다. 거룩한 생활을 통해서 드러나는 예수의 모델과 범죄와 타락의 생활로 드러나는 유다의 모델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