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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
타율과 방어율
<이정우 목사·기쁨의 교회 담임목사>

난 스포츠가 좋다. 요즘 바짝 더 그런 것 같다. 세상이 워낙 싱숭생숭하고 복잡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드라마, 특히 사극 같은 것에는 정이 안 간다. 권모술수가 난무하고 이리 얽히고 저리 설키는 이야기는 영 유쾌하지가 않다. 그에 비해서 스포츠는 단순한 맛이 있어서 좋다. 하나님이 만드신 대로 재주부리고 뿌린 만큼 거두는 것이 맘에 든다. 그 중에서 야구가 참 좋다. 특히 박찬호 선수의 게임은 거의 놓치지 않는다. 목사가 이런 말하면 핀잔을 들을 지 모르겠지만, 요즘 사는 낙 중의 하나는 박찬호 야구 보는 재미다. 좋은 걸 어찌하랴. 박찬호의 모든 게 좋다. 그의 용모, 실력, 태도... 모든 행동거지까지도 맘에 든다. 그야말로 박찬호 팬인 샘이다. 직업은 못 속인다고, 그래도 야구를 보면서 목사로서 생각하는 게 있다. 타율과 방어율에 대한 생각이다. 야구에 타율이라는 게 있다. 타자가 안타를 치는 비율을 나타내는 말인데, 전체를 10할로 잡았을 경우에 안타를 몇 번 치느냐에 따라 1할을 친다, 2할을 친다, 3할을 친다 한다. 그런데 보통의 경우는 3할을 넘지 못하는 모양이다. 3할 대를 치는 것은 굉장한 것이란다. 만약 매년 3할을 유지할 수 있는 선수가 있다면 그는 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란다. 일본의 이치로 같은 선수일 게다. 그러니까 3할 정도를 유지하는 것이 인간의 한계인 셈이다. 물론 이론적으로야 10할도 칠 수 있다. 그만한 이론과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열 번 나와서 세 번 치면 신의 경지다. 난 열심히 연습해도 아마 한 번도 재대로 못 칠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나는 우리의 도덕타율도 3할 정도면 대단히 우수하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알고 있고 말한 것의 3할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성인이다. 그러나 성인도 나머지 7할은 거짓말하고 나쁜 생각하며 죄짓는 것으로 채운다. 이것이 사람이다. 투수의 실력은 방어율로 따진다. 방어율이란 상대방의 공격을 얼마나 막아내느냐를 비율로 나타낸다. 막지 못하면 방어율이 높아진다. 방어율이 0이면 완벽한 투수이고, 10이면 빵점 짜리 투수다. 보통 1점 대는 찾아보기조차 힘들고, 2점 대면 특급투수고, 3점 대면 우수투수이며, 4점 대면 보통이고, 5점 대 이하면 하류에 속한단다. 박찬호 선수가 지금 2점 대를 유지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특급투수다. 이것이 선수들의 세계다. 보통의 경우는 열심히 훈련해도 5점 대를 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논리적으로야 모든 공격을 다 막아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절반의 방어율도 쉽지 않다. 죄와 유혹의 공격에 절반의 방어율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보통의 경우 몇 번의 유혹에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이 인간이다. 성경에 보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 이야기가 있다. 유부녀가 다른 남자와 동침하다가 유대종교 지도자들에게 발각되어 잡혀왔다. 종교인들은 이 여인을 군중들 앞으로 끌고 왔고, 많은 유대인들은 손에 돌을 들고 이 음탕한 여인을 심판하려고 한다.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께 묻는다.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했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는가?”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 말 한마디에 사람들은 양심에 가책을 받아 돌을 떨어뜨리고 돌아갔다. 예수님의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란 얘기다. 이 여인이나 너희들이나 다 똑같은 죄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난 은혜가 좋다. 용서가 좋다. 허약한 타율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인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좋다. 부실한 방어율을 가지고 쓰러지고 넘어진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는 따뜻한 손길들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