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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
건망증
<이정우 목사·기쁨의 교회 담임목사>

“여보, 자동차 키는 뽑았어요?", “라이트 끄세요.", “도어는 올렸어요?"…. 요즘 운전 중에 아내의 훈수가 부쩍 많아졌다. 내 건망증 때문이다. 난 이따금씩 자동차 키를 뽑지 않고 문을 닫아서 발을 동동 구르곤 한다. 라이트를 켜 놓고 주차했다가 배터리가 나가서 정비소 사람을 불러 긴급충전을 하기도 하고, 비오는 날 문을 열어놓았다가 시트를 흠뻑 적시기도 하고, 시동을 끄지 않은 채로 기름을 다 날리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이제 아예 아내가 직접 챙기는 모양이다. 할말없다. 내 건망증은 좀 심각하다. 비오는 날 우산을 가지고 나가 빈손으로 오는 것은 기본이다. 앉았던 곳에 책이나 핸드폰 따위를 놓고 오는 일도 다반사다. 자주 쓰는 전화번호나 물건을 잊어버리고 허둥대는 일도 허다하다. 심지어 잊어버리고 나간 물건 때문에 들어왔다가 무엇을 가지러 왔는지를 기억하지 못해서 그냥 나간 적도 있다. 몇 년 전에는 이사를 한 후 전입신고서를 작성하는데 갑자기 아내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필름이 끊긴 것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당신 이름이 뭐지?", “???……" 아내는 눈만 껌뻑였다. 이런 것들은 개인생활이니 내가 고생하면 그만이다. 문제는 교회에서다. 목사가 교우들의 이름과 가족관계를 기억하는 건 기본이다. 만약 목사가 이런 일에 실수하면 관심이 없다느니 사랑이 없다느니…. 말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난 거의 매주 상대방의 이름이나 가족의 정보가 기억나지 않아서 당황한다. 갑자기 끊기는 것이다. 어떤 땐 이름은 기억했는데 성을 갈아 버리는 통에 “목사님은 성고문하신다"는 농담(?)에 진땀을 뺀 적도 있다. 설교 중에 아주 기본적인 지명이나 이름을 잊어먹고 성도들에게 묻는 경우도 허다하다. 건망증의 원인을 찾아보았다. 이유도 여러 가지였다. 대략 간추리면 갑작스럽게 혹은 일정기간 동안 견디기 힘든 충격이나 압박, 수면부족 등으로 인하여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경험한 사람에게 많이 나타난단다. 내 경우도 그렇다. 신학대학원 2학년 때 부산에서 서울로 통학을 했는데 주중에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주말에는 내려가 교회에서 사역했다. 학교에서의 각종 기초과목과 성경연구, 히브리어, 헬라어 등을 소화하기도 벅찬 판에 지방에 내려가 토요일과 일요일을 꼬박 교회사역에 매달리다보니 그 무렵엔 평균 세시간 이상을 자지 못한 것 같다. 그 기간이 지나자 머리가 몹시 가렵고 흰머리가 많아지더니 건망증이 현저하게 심해졌다. 그러나 건망증을 불러일으킨 이러한 원인에도 불구하고 손상되지 않은 부분도 있다. 설교다. 매 주일 40분 짜리 설교를 서너 차례나 하는데 난 원고를 보지 않고도 별로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천재들(?) 중에 이런 경우들이 많단다. 칸트라고 기억된다. 그도 역시 건망증이 심했다고 한다. 그의 유년시절의 이야기인데 짓궂은 급우들이 점심시간 전에 칸트의 도시락을 슬쩍해서 다 까먹어 버렸다. 점심시간이 되어 도시락 뚜껑을 연 칸트는 이상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도시락이 비었기 때문이다. 이때 도시락을 축낸 친구가 “너 아까 시간에 도시락 다 먹었잖아"라고 하자 칸트는 “그래 참 그랬지…."하더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내 앞에 큰소리치며 우스개를 떤다. “난 천재적인 스타일이기 때문이야"라고….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게 있다. 아무리 큰 충격이나 압박으로 스트레스를 가해도 잊혀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이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핑계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그 속에 당신의 능력과 신성을 넣으셔서 사람이 그것을 느끼고 하나님을 찾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만물의 오묘한 질서와 아름다움을 대할 때마다 인간 너머의 어떤 힘과 조화를 느끼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