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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
뼈를 썩게 하는 질투
<이정우 목사·기쁨의 교회 담임목사>

미국 플로리다주에 거주하는 100세 된 노인이 동거해온 38세의 여자 친구에게 휘발유를 끼얹어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는 좀 재미있는(?) 소식이다. 이 노인은 법정에 출두해 애인이 다른 남자들과 시시덕거리는 것을 보고 일을 저질렀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 노인의 범행동기는 질투인 셈이다. 100세 노인의 해프닝이라고 넘겨버릴 수도 있겠지만, 이 황당한 사건으로 드러난 질투의 실체를 더듬어 본다. 질투는 자기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한 시기심과 경쟁의식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심리학자 브리슨(Bryson)은 질투는 시기와 경쟁심을 포괄한다고 했다. 세 가지가 다 일맥상통하는 셈이다. 질투는 그래서 대단히 본질적이다. 유교문화권에서는 주로 여자들에게 연결시켜 왔지만, 실제로는 남성의 질투가 더 골이 깊다고 한다. 특히 요즘 같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남성들은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살게 마련인데, 이 관념의 정신적 실체가 질투라는 것이다. 서로 시기하고 경쟁하며 사는 것이 일상이 된 것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러한 질투의 최대의 피해자는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한 농부에게 염소와 나귀가 있었다. 주인은 무거운 짐을 묵묵히 잘 나르는 나귀를 매우 사랑했다. 염소는 주인의 이런 태도가 못마땅했다. 염소는 질투를 느껴 나귀를 해칠 계략을 꾸미고 이렇게 말했다. “나귀야, 주인은 네게 일만 시키니 넌 참 억울하겠구나. 내가 한가지 꾀를 가르쳐주지” 염소는 나귀에게 속삭였다. “짐을 싣고 갈 때 자꾸 넘어지렴. 그러면 주인은 네 몸이 쇠약한 줄 알고 힘든 일을 시키지 않을 거야.” 그래서 나귀는 일부러 계속 넘어졌다. 주인은 건강하던 나귀가 넘어지는 것을 보고 놀라서 의사를 데려왔다. 의사는 “나귀의 기력이 약해졌으니 염소의 간을 먹이면 좋아진다”고 일렀다. 주인은 즉시 염소를 잡아 나귀를 치료했다. ‘질투’는 부메랑과 같다. 이러한 질투의 비극적 정서를 잘 표현한 영화가 생각난다. ‘아마데우스’이다. 모차르트의 천재적인 음악성에 질투를 느낀 안토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의 독백으로 된 영화다. 정말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질투했느냐에 논쟁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둘의 경쟁관계를 바탕으로 극작가인 알렉산더 푸쉬킨(Alexander Pushkin)이 각본을 쓰고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곡을 붙인 ‘모짜르트와 살리에르’가 탄생했고, 피터 쉐퍼(Peter Shaffer)는 희곡 ‘아마데우스’를 썼으며, 밀로스 포먼(Milos Forman)은 이것을 영화화하여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쉐퍼의 희곡에 나오는 한 장면은 질투하는 사람이 얼마나 비참하게 되는 지를 보여준다. 살리에리는 부족함이 없는 지위에 있었다. 모차르트가 비엔나에 오기 전에 7년 동안이나 궁중 작곡가요 이탈리아 오페라의 지휘자로 입지가 확고했다. 36년간이나 황제의 궁중 악장이란 높은 지위를 누렸다. 그의 음악적 권위와 명성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는 모차르트를 향한 비극적인 질투에 사로잡히고야 말았다. 어느 날 그는 모차르트의 29번 교향곡 A장조의 첫마디를 응시하고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기절하여 쓰러진다. 마치 복사본 처럼 교정의 흔적이 없는 완벽한 초안을 본 것이다. 머리 속에서 완벽하게 끝낸 음악을 그저 옮겨 적은, 음표 하나만 옮겨도 곡이 손상될 것 같은, 어디 하나만 바꾸어도 구성이 무너질 것 같은 절대적인 미를 목격했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 비웃듯 항변한다. “저는 제 운명을 압니다. 아담이 벌거벗은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이제 저는 처음으로 공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너무나 초라한 자신을 창조한 하나님을 저주하기에 이른다. 성경 잠언에 “마음의 평화는 육신의 생명이나 질투는 뼈를 썩게 한다”는 말씀이 있다. 그렇다. 생명을 주는 평화도 뼈를 썩게 하는 질투도 다 마음속에 있다. 정말 인생은 생각에 달려있다. 오늘, 뼈를 썩게 하는 세상살이를 한 발치 떨어져서 바라보면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