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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소리>
우리사회 수준 되새겨 보자
최원철 원장(경기 이천 상아치과)

2001년 8월 8일 오전, 대한민국 주식시장에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동시호가를 준비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 자판을 부지런히 두드리고 있었다. 콜 62.5를 보고 있었던 국내 모 증권사 선물 옵션담당 A씨는 9시에 장이 시작하자마자 컴퓨터 모니터에 보이는 숫자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떤 멍청이가 계약 당 프리미엄 75만원 짜리를 단돈 1000원에 8800개나 팔려고 내놓은 것 아닌가? 그것도 70억원 어치를.... 본능적으로 3000계약을 매수하려고 서둘러 엔터를 치는 A씨의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3000계약 중에 2880계약이 체결되었다. 실수로 내놓은 8800계약의 나머지도 모두 팔려나가 상황은 순식간에 종료되었다. 이날 A씨가 288만원의 원금으로 엔터 한 번 치면서 몇 초 사이에 번 돈은 무려 20여억원, 740배의 대박이 터진 것이었다. 그날 자판을 잘못 눌러 멍청하게 싼값으로 매도주문을 한 국내기관투자가는 일순간 70억원을 잃었고 그 중 반 이상인 36억원을 외국계 G증권사가 가져갔다. 이렇게 외국계 증권사가 발 빠르게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이 외국계 증권사가 이런 사태에 대비해 터무니없는 주문 실수를 미리 감식하고 자동적으로 매수, 매도하는 ‘WOLF’라는 스크리닝 프로그램을 깔아 놓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이 날은 한심한 국내기관 투자가가 컴퓨터 자판을 잘못 눌러 ‘740배 대박’이 아니라 ‘740배 피박’을 당하면서 우리 나라 금융시장의 수준을 전 세계에 알림과 동시에 36억이란 국부를 외국에 유출시키는 웃지 못할 씁쓸한 해프닝이 일어난 날이었다. 90년대 어느 유수 치과대학병원에서 치아 치료를 받은 모 재벌 기업 회장이 사장단 회의에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낙후된 곳은 치과’라고 엉뚱한 곳에서 화풀이를 했다지만 아마 대한민국 주식시장 시스템 또한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이다. 이미 증권가에서는 ‘증권거래에서 이런 종류의 실수는 누구라도 저지를 수 있고 일년에 한두 번 정도는 발생한다’라는 것이 알려진 사실이다. 사람이니까 실수는 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있을 수 있는 실수를 예상하고 이 것을 잡아낼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런 실수를 대비해서 미리 프로그램을 깔아놓았던 외국계 증권사는 순식간에 우리 돈 36억을 가져갔다. CIH 바이러스 대란을 계기로 도약을 했던 안철수 CEO의 말과 같이 외국인들에게는 단순한 행운이 아니라 ‘준비된 기회’였던 것이다. 이렇게 있을 수 있는 문제에 대비하기는커녕, 일반투자자들이 맡긴 돈을 가지고 컴퓨터에 잘못 입력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국내 기관 투자가의 모습은 IMF의 수련을 받으며 선진 금융기법을 쬐끔 맛봤다고 으스대는 오늘 우리들의 자화상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수준이 아직 멀었음을 반증한다. 우리가 주목하는 점은 주식시장에서만 이런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조직간 서로 같은 농도를 유지하는 유기체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곳이 사회다. 한 사회의 전반적인 수준은 각 분야의 고만고만한 수준이 모여 형성됨을 볼 때 어느 특정 분야만 월등히 투명하다거나 수준이 높을 수는 없다. 8월초 주식시장에서 일어난 740배 대박이 아닌 피박(?) 해프닝은 우리 나라의 금융시장 아니 주식시장의 낙후된 수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크게는 정치, 사회, 경제, 복지 분야에서부터 작게는 남을 배려할줄 모르는 개인에 이르기까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에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으로 내키지는 않지만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깨끗이 인정해야 한다. 나와 내가 살고 있는 현 사회수준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가감 없는 평가는 우울한 시대에 언젠가부터 잊고 살았던 희망이란 조각을 꺼내 우리가 다시 맞추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