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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
회칠한 무덤
<이정우 목사·기쁨의 교회 담임목사>

장마철을 보내면서 지하실이 늘 맘에 걸렸다. 구리로 이사오면서 얻은 집이 좁아서 절반 정도의 책을 지하실에 쌓아 놓았는데, 아무래도 이번 장마에 무사할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지하실 문을 열자 습한 기운과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염려했던 대로였다. 강우 때문에 비가 지하실로 새어 들어와 여기저기서 썩고 탈이 나 있었다. 나는 책을 쌓아 놓은 쪽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수 백 권의 책들이 썩고 있었다. 마음이 몹시 아팠다. 그 책들은 가난하던 시절에 사 모은 것들이다. 신학을 시작하면서 대학에 다닐 때 나는 필사적으로 책을 사 모았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을 꾸리던 아내는 일주일 용돈이라며 만원이나 이 만원을 손에 쥐어 주곤 하였다. 그럼 나는 예외 없이 서점에 들러서 책을 사곤 하였다. 그렇게 4년 동안 5백여 권의 책을 모았다. 대학원을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렇게 사 모았던 대부분의 책들을 이번 장마에 버린 셈이다. 나는 건질만한 책을 골라 보았다. 그러다 참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고 민망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어려운 형편에 애써 사 모은 책이었건만 절반 이상도 읽지 않은 채 썩히고 있었다. 물론 목회자에게 모든 책이 자료가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꼭 필요하지도 않은 책들을 그렇게 긁어모은 행동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연스럽지가 않다. 읽지도 않은 책들을 비좁은 방안 가득 꽂아놓고 흐뭇하게 생각하던 일이 스스로에겐 헛된 허영심이요, 다른 사람에겐 지식을 가장한 위선이었던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의원이 목포대에서 명예 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단다. 20권에 달하는 저서와 논문을 통한 학문적 업적과 행정 및 지역발전에 대한 공로가 인정되었다고 한다. 그는 벌써 네 번째 명예 박사학위를 얻었다. 그래도 부모 좇아가려면 아직 어림도 없다. 김 대통령도 모두 10개의 박사학위를 갖고 있다. 그 중에는 1992년 한국의 민주주의 생성과 발전원리를 다룬 논문으로 러시아 외교아카데미에서 받은 진짜 박사학위도 하나 있다. 이희호 여사도 뒤지지 않는다. 87년 미국 노스이스턴대학 명예 인문학 박사를 시작으로 교육학, 철학, 문학 등에 걸쳐 7개의 명예 박사학위를 갖고 있다. DJ가족의 박사학위를 다 합해도 일붕(一鵬) 서경보 스님에는 족탈불급(足脫不及)이다. 지난 96년 세수 81세로 입적할 때까지 일붕은 102개의 명예박사학위를 수집했다. 우리 나라에서 아직 아무도 못 깬 기록이다. 남들에겐 욕심을 버리라고 하면서도 학위욕심만큼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기네스북에 올라있는 명예박사 최다보유기록은 미 노커데임대학의 시어도어헤스어 명예총장(83)이 갖고 있는 141개이다. 공교롭게도 그 또한 성직자다. 성직자가 다 신기록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부터 DJ까지 우리 나라 역대 대통령이 보유한 박사학위를 다 더하면 27개나 된다. 물론 대부분 명예학위다. 유일하게 박정희 대통령만 없다. YS는 임기동안 4개국에서 7개의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통령이 되면서 매년 1.4개꼴로 학위를 모은 셈이다. 학위라면 JP도 빠지지 않는다. 11개로 ‘3김’ 중에 으뜸이다. 공동정권 총리로 있던 98년 가을에는 두 달 새 4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쓸어 담은 일도 있다. 허영심은 역겹다. 위장된 것일수록 더욱 그렇다. 위선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위선을 대단히 싫어하셨다. 특별히 위선적인 종교지도자들의 신앙을 꼬집어 ‘회칠한 무덤’이라고 일갈하셨다. 정신적인 허영일수록 더 위선적이기 때문이다. 지하실을 정리하다 중단했다. 습기와 냄새 때문이다. 물 묻은 책들을 대충 한 쪽으로 몰아놓고 자물쇠를 걸었다. 역겨운 것은 썩는 냄새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제 날 잡아서 버릴 것은 버리고 챙길 것은 챙겨서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