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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
옥수수 밭의 교훈
<이정우 목사·기쁨의 교회 담임목사>

벌써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는 모양이다. 저자거리의 사람들이 하루가 다르게 이야기의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대중목욕탕에 갔다가 바둑을 두는 두 사람 곁에 붙어 앉았다. 나보다 잘 두면 한 수 배우고 그렇지 않으면 훈수라도 둘 참이었다. 그런데 몇 수를 두지도 않아 화제는 전혀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 바둑 이야기가 아니었다. 대선 이야기였다. 이들이 펴놓은 것은 바둑판이 아니라 정치판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판을 다 읽고 있었다. 작금의 판세를 읽고 대선 구도를 점치는데 아주 능해 보였다. 간단한 몇 마디의 해설로 나에게 여야의 대선 싸움이 포석단계를 넘어가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이 몇 마디의 훈수에, 나는 금방 이들이 고수들임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다소곳하게 들었다. 이들은 여당의 판세를 짚어 가면서, 마치 축을 몰아가듯이, 마지막 주자가 될 두 사람을 가볍게 잡아냈다. 그리고 이미 단독주자로 달리고 있는 야당의 후보와의 관계에서 누가 최종주자로 지목될 지에 대한 수 싸움을 벌였다. 확실히 정치 9단 다웠다. 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나라 사람들이 대단히 정치를 보는 눈이 뛰어나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그러나 정작 고수들의 정치의식에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발단은 각 후보들에 대한 이들의 점수가 후하지 않은 데서 비롯되었다. 여당의 후보는 이렇고 저렇기 때문에 정석에서 떠났고, 야당의 후보는 또 이런 저런 꽁수를 두기 때문에 맘에 안 들어 했다. 맘에 드는 후보가 없단다. 결국 찍을 후보가 없다면서 다 두지도 않은 바둑판을 쓸어버리고 일어섰다. 지들끼리 잘 해 먹으라고 하면서…. 난 이들의 말미를 보면서 우리 민족은 어쩌면 차선을 선택하는 지혜가 부족한 민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들은 소중한 차선을 포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잘 모르지만, 민주주의 장점은 차선에 있기 때문이다. 차선을 잘 선택하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의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인디언 한 부족의 재미있는 이야기다. 그들은 추장의 딸들이 성숙해지면 옥수수 밭으로 데리고 가서 인생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그 교육과정에서 추장의 딸들은 지정된 밭고랑에 서서 한 번 내디딘 걸음을 후퇴하거나 한 번 쳐다본 옥수수를 다시 보지 않고 지나가면서 그 고랑에서 제일 좋은 옥수수 하나를 따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은 옥수수를 따지 못한 채 밭고랑 끝에 와 버리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좋은 옥수수가 눈에 띌 적마다 더 좋은 옥수수가 다음 순간에 나타날 것 같아서 따지 않고 지나치다보니 어느새 밭고랑 끝에 와버리고, 그 때 눈에 띈 옥수수는 고랑을 지나오면서 넘겨버린 것 보다 좋지 못해 속상해서 따지 않아서 결국 빈 바구니로 밭고랑 끝에 이른다는 것이다. 추장의 딸로서 모든 남자를 다 자기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특권은 있지만 막상 고르려니 그것이 쉽지 않다는 말이다. 제일 좋은 사람을 고르겠다는 생각으로 웬만한 사람은 다 지나쳐버리다가 나중에는 혼기까지 놓치기 쉽다는 것을 경고해주는 소박한 교훈이다. 한 밭에서 자란 옥수수니 그 크기는 대동소이한 것이다. 그놈이 그놈이다. 작은 것이라도 자기 눈에 크게 보인 순간에 땄다면 그래도 빈 바구니 신세는 면했을 것이다. 이상적인 최선보다 현실적인 차선이 얼마나 나은가! 멀리 있는 최선보다 가까이 있는 차선이 얼마나 더 바람직한가! 그러므로 최선이 보이지 않으면 차선을 택하는 것이 지혜이다. 백성이 너무 이상적이면 곤란하다. 백성의 눈이 너무 높으면 지혜가 멀어진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너무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고. 그렇다. 지혜는 때때로 낮은 데 있다. 쓸어버리고 일어나는 고수들에게 내가 말했다. “그래도 두던 바둑은 끝내시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