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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
그곳엔 고향이 없었다
<이정우 목사·기쁨의 교회 담임목사>

귀소본능일까. 나이를 먹어가면서 고향 생각에 문득문득 사로잡히는 횟수가 잦아진다. 그럴 때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곤 한다. 이번 추석만 해도 그렇다. 애당초 고향 갈 계획이 없었다. 어디 가볍게 외출이라도 하자는 아내의 성화에 이곳저곳을 생각하다가 고향생각이 떠올라 그만 발동이 걸렸다. 부랴부랴 두어가지 옷가지를 챙긴 후 충청도 서천을 향해 시동을 걸었다. 엄청나게 막혔다. 구리를 빠져나가는 데만 한 시간을 잡아먹더니, 서해안 고속도로를 지나는 내내 정체와 서행을 계속하였다. 그래도 기꺼이 감수했다. 고향산천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 난 늘 그리워한다. 드문 일이지만, 내가 고향을 찾는 이유는 순전히 고향산천이 그리워서다. 부모님이 계신 것도 아니고, 만날 친척이나 친구가 있어서도 아니다. 태어나 살던 그 향취를 느끼고 싶어서 휑하니 둘러오곤 한다. 열 시간 여를 달려서 도착한 곳, 그러나 그곳은 고향이 아니었다. 태어나서 정붙였던 옛집도 온데 없고, 산새 들새 지저귀던 뒷동산도 간데 없었다. 졸졸대며 흐르던 집 앞 냇가도 이야기를 멈추었고, 하늘 높이 솟아오르던 종달새의 들판도 노래를 잃은지 오래였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도 간판만 초등학교로 바뀐 게 아니었다. 다 어색하다. 여기저기 파헤쳐서 길을 냈고, 포장된 아스팔트를 내달리는 자동차 소리 때문에 갈잎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산과 들을 깎아 만든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때문에 내가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갯벌을 막고 둑을 쌓아 만든 괴물 같은 방조제가 옛날과 화해할 수 없는 견고한 담처럼 보인다. 아! 그곳엔 고향이 없었다. 돌아오던 길의 정체는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미국의 문학가로 잘 알려진 토마스 월트의 소설 중에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라는 소설이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꿈이 많았다. 그리고 젊어서 꿈꾸던 그 모든 소원을 다 성취했다. 돈도 벌었다. 명예도 얻었다.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였고, 똑똑한 자녀도 골고루 두었다. 소원하는 모든 것들이 다 성취되었다. 그리고 이제 주인공은 오랫동안 그리던 고향에 가고 싶어졌다. 주인공은 기차를 타고 옛날에 자기가 살던 고향 땅으로 간다. 노스 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애쉬빌이라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역전에 내리는 순간, 그러나 그는 몹시 당황하고 실망한다. 고향은 너무나 변해 있었다. 거리는 현대화되고, 친구는 남이 되고, 사람들도 변해 있었다. 고향 땅에 온 자신은 오히려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그곳은 이미 자기가 꿈에 그리던 마음의 고향이 아니었다. 주인공은 돌아오는 기차에 다시 오른다. 그리고 슬프게 고백한다. “나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 어제의 평화와 고요함으로 돌아갈 수 없다. 뒤로 가는 길은 영원히 사라진 것이다.” 우리는 고질적인 향수병을 가지고 있다. 이 지독한 질병에서 어떻게 헤어날 수 있을까. 이번 명절에만도 대략 3천 만 명이 이동했다고 한다. 그곳에 가면 치료될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정체와 서행에 지친 피곤한 몸을 달래면서 고향을 다녀온 사람이나, 임진각을 찾아 경의선 철도와 자유의 다리를 바라보면서 빗속에 눈물을 삼키던 실향 노인이나, 뚝섬 공원에서 공을 차면서 향수를 달래던 외국인 노동자들 모두가 불치병에 가슴앓이를 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왜 그런가. 고향은 그저 그리워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가보면 그곳엔 고향이 없다. 월트의 말이 맞다.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 뒤로 가는 길은 영원히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가는 고향을 간다. 내가 가는 이 길의 끝에는 나의 고향, 잃어버린 에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