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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
둘 다 신경통이 있다
<이정우 목사·기쁨의 교회 담임목사>

양로원엘 다녀왔다. 의지할 데 없는 10여명의 노인들이 옹기종기 지내고 계셨다. 다들 그렇겠지만,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이 노구(老軀)의 몸으로 힘겹게 사는 모습들을 보니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온전한 분들이 별로 없어 보였다. 눈이 보이지 않는 분, 허리가 불편하신 분, 치매 때문에 고생하시는 분, 지병 때문에 시달리시는 분…… 그야말로 고통을 살고 있었다. 늙고 병든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그러나 한 노인장의 모습을 보고 난 큰 감동을 받았다. 그 분은 다른 한 노인을 계속 따라 다니고 있었다. 시각장애에다가 심각한 치매를 동반한 한 노인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면서 그의 손과 발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 역시 불편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는데도 말이다. 이유를 묻는 나에게 노인은 짤막한 한 마디를 건넸다. “내 몸이 아프니까 남 아픈 것 알지. 그러니까 내가 친구지…….” 고통은 인간에게 위대한 것을 가르치고 있었다. 오 헨리의 단편 중에 <강도와 신경통>이란 소설이 있다. 한 강도가 한밤중에 어느 집에 권총을 들고 들어갔다. 그는 잠자는 주인을 깨우며 “손들어”하고 외쳤다. 잠결에 놀란 주인은 벌벌 떨면서 왼손을 겨우 들었다. 그러자 강도는 또 고함을 쳤다. “오른손도 들어” 그래도 집주인은 왼손만 더 높게 들뿐이었다. 화가 난 강도는 또 다시 “오른손도 들란 말이야”하며 고함을 질렀다. 그 때 집주인이 벌벌 떨면서 “미안하지만 오른손은 신경통 때문에 들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강도는 “신경통? 제기랄, 나도 신경통 때문에 이 짓을 하고 있는데…….”하는 것이었다. 그 강도 역시 오른손이 신경통으로 마비가 되어 제대로 일을 못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택한 게 강도 짓이었던 셈이다. 신경통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 그는 자신이 강도라는 것도 잊고, 언제부터 그랬느냐, 어떻게 치료하느냐, 무슨 약을 쓰느냐 묻고 답하며 밤을 지샌 후 멋쩍게 헤어졌다는 이야기다. 인간은 고통을 통해서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성경에 보면, 태초의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타락하였을 때, 하나님은 벌로 고통을 주셨다. 여자에게는 산고(産苦)를, 남자에게는 노고(勞苦)를 주셨다. 그들의 환경엔 끊임없이 엉겅퀴가 나도록 하셨다. 그래서 사람은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여기에 하나님의 뜻이 숨어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고통을 주심으로 진리에서 떠난 인생에서 통증을 느끼고 돌아와서 다시 친구가 되도록 하신 것이다. 이 동병상련(同病相憐)을 통해서 하나님과 친구가 되고 사람과 친구가 된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 억압받는 자, 소외된 자, 멸시받는 자들과 함께 하셨다. 그리고 각종의 장애인들과 지병에 시달리는 자들과 친구로 지내셨다. 예수님 곁엔 언제나 그런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예수님은 어떻게 이러한 마음과 눈을 가지게 되었을까. 어떻게 이런 사랑을 소유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예수님의 삶이 말해준다. 예수님은 태어날 때 외양간에서 태어나셨다. 그가 누웠던 첫 보금자리는 말구유, 짐승의 여물통이었다. 이처럼 가난하게 태어난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자라면서 호강한 것도 아니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의 목수들이 그랬던 것처럼 행상을 했다. 골목을 누비고 다니면서 “쓰다 부서진 농 고치세요. 부서진 찬장 고쳐요. 중고 농기구 고쳐요.......”하며 큰 소리로 외치고 다니면서 수리해주고 먹고 살았다. 예수님은 아버지 꽁무니 따라 다니면서 중고물품 받아 가지고 와서 망치질하면서 인생을 배우셨다. 톱질하면서 실존을 체득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을 보면 마음이 뭉클 하셨다. 병들어 고통 당하는 사람을 보면 그냥 못 지나가셨다. 때때로, 고통은 참 좋은 것이다. 오늘도 이것 때문에 강도와 집주인이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들에게는 둘 다 신경통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