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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
디오게네스가 보고싶다
<이정우 목사·기쁨의 교회 담임목사>

교우의 집을 방문하고 밤늦게 돌아오다가 골목에 버려진 서랍장을 발견했다. 누가 서랍장을 새로 장만하고 쓰던 것을 버린 모양이었다. 컴컴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대충 보기에도 쓸만했다. 찬찬히 살펴보니 부서진 곳도 없고, 도색상태도 멀쩡했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우리 것과 바꾸자고 했더니 반색하며 기뻐했다. 12시가 넘은 한 밤중에 아내와 나는 낑낑대며 서랍장을 집으로 옮겼다. 그리고 역시 신혼 초에 부산 어느 길목에서 주어서 사용해오던 서랍장을 내놓았다. 한밤중의 부부도적(?)을 보고 달님이 웃고 있었다. 우리 집은 이런 것들이 제법 많다. 신발장, 장롱, 서랍장, 책상, 책꽂이 등등……. 가구뿐만이 아니라 입는 옷가지며 신발, 그리고 책이나 공구에 이르기까지 버려진 물건이나 교환한 중고물품들이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신혼 초부터 쭉 그래왔다. 물론 절약하기 위해서이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유행에 좀 처지고 낡았을 뿐이지, 다 쓸만한 것들이고 별 불편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집에 들여놓을 때마다 종종 하는 생각이 있다. 우리가 참 복 받은 민족이라는 것이다. 우린 너무 풍족하게 살고 있다. 물론 요즘 나라 살림살이가 이만저만이 아닌 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이 땅은 너무나 풍족하다. 아직 우리는 쓸만한 것을 버리며 살고 있고, 또 이렇게 버려진 것으로도 충분히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절대 빈곤자가 여전하다는 것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도 여전히 하루 세끼가 힘겨운 이웃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가난은 마음에서 느끼는 것들이다. 풍족하게 살면서도 스스로 자족하지 못하고 남과 비교하며 불행을 자초하는 상대적인 빈곤이 문제인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우리의 현실을 꼬집는다. 한 가난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일을 마치고 집에 올 때마다 멀리 강 건너편에 있는 집이 황금유리로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소년은 생각했다. “아, 저 황금 유리 집에 사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저 집에 가보고 싶구나.” 그러면서 늘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다. 그가 보는 자신은 그야말로 ‘비참함’ 그 자체였다. 그러다 하루는 소년이 큰 결심을 하고 그 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 집과 유리창은 황금이 아니었다. 창이 많은 그 집은 노을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날 뿐이었다. 이 ‘허무한 확인’을 하고 나서, 소년은 멀리 있는 자신의 집을 보았다. 놀랍게도 자신의 집도 노을을 받아 황금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성경은 자족하는 법을 가르친다. 성경에 나오는 바울이라는 사람은 신앙을 통해서 이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자족하며 당당한 것은 참 멋있다. 고대 희랍에 디오게네스라는 괴짜 철학자가 있었다. 늘 통 속에서 살면서 큰 소리를 떵떵치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당대의 영웅 알렉산더 대왕이 그를 찾아왔다. “디오게네스 선생, 당신 소원은 무엇이오? 무슨 불평이 많아서 통 속에서 소리만 고래고래 지르는 거요? 소원을 말하시오. 들어주겠오.” 그러자 그는 잠이 덜 깬 눈을 부시시 뜨고 이렇게 말했다. “대왕이시여! 소원이 있습니다. 딱 한 가지요. 조금만 비켜 주세요. 대왕의 그림자가 해를 가려 제가 조금 춥습니다.” 괴짜 철학자의 능청에 수행원들이 벌컥 화를 냈다. “이런 발칙한 놈이 있나, 감히 어느 존전이라고…….” 그때 알렉산더 대왕은 손을 들어 말리면서 이런 말을 했다. “경들은 너무 화를 내지 마시오. 저 친구 아주 멋쟁이야”라고. 갑자기, 통속에 앉아서 자신의 그늘을 요구하는 디오게네스가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