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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
우리 몸이 원하는 음료
<이정우 목사·구리 기쁨의 교회 담임목사>

오랜만에 영화 한 편 보고 싶어서 골목 비디오 가게에 들렀다가 언짢은 싸움 구경만 했다. 가게 주인 내외가 심하게 싸우고 있었다. 술 때문이었다. 내가 갔을 때, 초저녁인데도 주인은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약간 혀가 말리는 투로 손님들을 대하고 있었는데, 잠시 후에 온 부인이 이런 남편의 모습에 발끈하는 바람에 전쟁이 나고야 만 것이다. 술 때문에 지긋지긋하다는 부인의 앙칼진 푸념이 귀에 쟁쟁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한국이 OECD 회원국 가운데 술을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란다. 특히 독주는 단연 으뜸이란다. 소주, 위스키 같은 고도주(高度酒)의 소비량은 회원국 평균의 대여섯 배에 이른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소비량이 주는 추세인데 우리만큼은 크게 증가했으며,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이것만큼은 고속성장을 했단다. 성인 다섯 명 중 한 명은 알코올 중독 수준이라니, ‘술독에 빠진 한국’이라는 외국신문의 타이틀이 과장만은 아닌 듯 싶다. 나도 한 때 술로 살았던 시절이 있어서 술맛도 알고 이해도 한다. 또 현실적으로 “술 한 잔 하는 낙조차 없다면 이놈의 세상을 어떻게 살겠는가”라는 넋두리에도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다. 의사들은 한 두 잔이 몸에 좋다지만, 건강 때문에 술 마시는 사람도 없고, 그것으로 만족하는 한국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마실 수밖에 없는 인생이니, 독일의 철학자 리케르트의 말대로, 사람들은 어떠한 이유를 대서라도 마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때문에 치러야 하는 대가가 너무 안타깝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소중한 건강을 잃고, 뜻밖의 사고와 범죄에 시달리며, 자신과 가정과 사회를 망가뜨리는지……. 개인적으로 술만큼 좋은 음식도 없다고 생각한다. 생각할수록 의미 있는 음식이다. 다만 이것을 감당하기에 인간이 너무 연약하다는 게 문제다. 술 앞에 장사가 없다. 성경에, 당대 최고의 의인이라 칭송 받았던 노아도 술을 마시고 자식들 앞에 하체를 드러내지 않았던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술은 때때로 광약(狂藥)이 된다. 아라비아의 얘기다. 악마가 한 사람에게 나타나 “앞으로 큰 화가 미칠 것이다. 그 액을 피하려면 다음 세 가지 중 한 가지는 반드시 해야 한다. 너의 종 중에 하나를 죽이든지, 네 아내를 때리든지, 큰 병의 술을 다 먹든지 하라”고 주문했다. 죄 없는 종을 죽일 수도 없고, 살림 잘하는 아내를 때릴 수도 없었다. 그래서 술을 택했다. 술을 잔뜩 먹고 취한 이 사람은 자기의 아내를 공연히 트집을 잡아서 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죄 없는 부인을 왜 때리느냐고 말리는 종과 실랑이를 벌이다 그만 그를 죽이고야 말았다는 얘기다. 탈무드에서 읽은 것 같다. 하루는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고 있었다. 인간을 넘어뜨리기를 좋아하는 사탄이 다가와서 슬며시 물었다. “당신은 지금 무슨 나무를 심고 있는 거죠?” “포도나무요.” “그 나무를 심어서 무엇 하려고요?” 사탄이 묻자, 노아가 대답했다. “열매를 따먹으려고 그럽니다. 이 열매는 보기에도 좋지만, 즙을 짜서 마시면 마음속에 기쁨이 차 오른답니다.” 샘이 난 사탄이 “그렇다면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며 거들다가 양의 피와 원숭이의 피와 사자의 피와 돼지의 피를 나무 밑에 부었다. 그래서 술을 마시면 처음에는 양처럼 온순하다가, 원숭이처럼 재주를 부리며 노래와 춤을 추고, 나중에는 서서히 사자처럼 난폭해져서 서로 싸우고, 결국에는 돼지처럼 아무 데서나 드러눕고 뒹군단다. 만약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노아는 한 가지 잘못 안 게 있다. 술을 마신다고 마음속에 기쁨이 차 오르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간은 무엇을 먹어서 진정한 기쁨을 느끼도록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바닷물로 갈증을 덜려는 것과 진배없다. 먹으면 먹을수록 갈증만 더할 뿐이다. 우리의 몸은 근본적으로 다른 음료를 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