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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
조폭 모델링(Modeling) 효과
<이정우 목사·구리 기쁨의 교회 담임목사>

수업 중인 교실에서 동급생을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이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참으로 끔찍하다. 이제 갓 중3인 학생이 교사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흉기로 아홉 차례나 찔러서 살해했단다. 친구를 상습적으로 폭행한 것에 분노했다고 하는데, 아수라장이 되었을 교실현장을 떠올려보니 참으로 아찔하다. 매스컴을 통해서 학교폭력의 심각성에 대해서 들어왔지만 이 정도인줄은 몰랐다. “아이들을 학교 보내기가 겁난다”는 말이 실감난다. “영화 ‘친구’를 보면서 친구를 지켜주는 게 의리라고 생각했는데…. 친구가 억울하게 맞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꼭 복수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현장검증을 하는 아이의 담담한 고백이다. 영화 ‘친구’가 그에게 이런 식의 의리와 폭력을 가르친 것이다. 이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영화 ‘친구’를 보았던 때가 생각났다. 세간에 워낙 화제였기 때문에 목사인 나도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동료 목회자와 함께 극장엘 찾았었다. 386세대의 시절을 배경 삼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여간 반갑지가 않았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난 두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첫째로, 주제로 삼고있는 ‘의리’라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폭들의 의리’를 미화한 것이 그것이다. 또 한가지는 너무 잔인하다는 점이었다. 우포를 타고 가슴 깊숙이 전해진 끔찍한 충격은 꿈속에까지 나를 따라와서 괴롭힐 지경이었다. 그날 나는 ‘친구’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장문의 글을 남겼다. 글은 길었지만, 내용은 간단했다. ‘조폭들의 의리’로 감동을 전해주는 것은 일종의 사기라는 것과 너무 잔인하다는 얘기였다. 물론 이런 윤리적인 잣대로 영화를 평가하는 것이 무리라는 부담을 안고서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글은 그야말로 묵사발이 되었다. 한마디로 영화를 모른다는 핀잔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영화도 사람 사는 얘기인지라 악영향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악을 다루는 거야 자유지만, 그것을 미화하는 것은 많은 사람을 속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모델을 통해 변해 간다. 특히 청소년들은 더욱 그렇다. 심리학자 밴듀러는 어떤 사람을 모델로 하여 스스로 변해 가는 것을 ‘모델링(modeling)’이라 불렀다. 모델링에는 세 가지의 효과가 있단다. 첫째, ‘관찰학습의 효과’이다. 직접 시행착오를 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관찰하는 것만으로 벤치마크를 갖게 되는 것이다. 운동선수의 경우 기량이 늘지 않고 답보상태(플라토현상)에 있을 때, 훌륭한 선수의 테크닉을 보는 것만으로 기량을 늘릴 수도 있다. 둘째, 어떤 행동을 억제한다든지(억제 효과) 억제되어 있던 행동을 활성화(탈억제효과)하게 한다. 나쁜 행동을 억제한다든지, 좋은 일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셋째, 프로이트의 심리학에서 ‘동일시(同一視)’라 하는 것과 같이, 좋아하여 흉내를 내거나 따라 하게 하는 ‘반응촉진 효과’다. 그러니까 이번 교실살인사건은 ‘조폭 모델링 효과’인 셈 이다. 헐리우드 영화로 통칭되는, 요즘 대중문화는 모델링 효과에 있어서 많은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폼생폼사.’ 많은 청소년들의 좌우명이다. “시다바리처럼 살지 않겠다.” “조폭이 될지언정 가난할 수는 없다.” “복수는 나의 것이다.” 많은 청소년들의 좌우명이고 철학이다. 그야말로 ‘공공의 적’이 누구인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어떤 대상을 모델로 삼느냐에 인생이 달라진다. 도둑이나 강도가 우리 아이들의 모델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그래서 오늘도 성경은 이렇게 타이르고 있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