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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
전학시키지 못할 것 같다
<이정우 목사·구리 기쁨의 교회 담임목사>

요즘 우리 내외에겐 조그만 고민거리 하나가 있다. 발단은 이사 때문이다. 2년 전, 우리는 교회를 개척하려고 이곳 구리에 전셋집을 얻었다. 그리고 잽싸게 2년이 지나갔다. 이제 또 이사를 해야할 형편이다. 아내와 나는 전세대란의 전쟁터를 누빈 끝에 또 다른 방 두 칸에 도장을 찍었다. 이사를 앞두고 요새 우리 집은 약간 들떠있어 좋다. 문제는 아이들 전학문제다. 아주 먼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동(洞)이 다르기 때문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전학시켜야 한다. 그런데 5학년 딸 에스더가 반기를 들었다. 그냥 다니겠다는 것이다. 상당히 멀어진 거리를 감수하겠단다. 꿀맛 같은 아침잠도 포기하겠단다. 이유는 간단하다. 담임선생님 때문이다. 요즘 에스더가 확 달라졌다. 학교생활이 너무 신나고 즐겁단다. 지금의 담임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다. 학교에서 오면 말이 참 많은데, 매일 선생님 얘기다. 무슨 말씀을 하셨고 어떤 칭찬을 들었고 기분은 어땠고…. 들어보면 시시콜콜한데 침이 튄다. 오늘은 어이가 없었다. 어버이 날이라고 감사편지를 건네는데, 내용을 보니까 “선생님 때문에 요즘 학교 생활이 너무 행복해요. 부모님 감사해요.” 누구에 대해서 썼는지 모르겠다. 좋아하는 이유도 많다. 귀담아 보면 구구절절 이다. 친절하시다, 잘 웃어 주신다, 잘 가르쳐 주신다, 칭찬을 잘해주신다…. 딸애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요즘 나도 덩달아 행복하다. 내 딸에게 행복을 퍼주시는 선생님이 곁에 계시다는 게 여간 기쁘지가 않다. 교사의 체벌문제로 시끄럽던 일이 기억난다. 된다 안 된다 말도 참 많았다. 그러나 나는 지금 딸애를 때려 달라고 선생님께 회초리라도 드리고 싶다. 믿음 때문이다. 조선조 영조 때 이재라는 큰 학자가 있었다. 그는 일찍이 홀어머니 밑에서 컸는데, 어머니는 어린 그를 시동생인 당대의 정치가 이만성에게 잘 키워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후 이만성은 “공부를 안 해 매를 때렸는데 그만 죽었다”고 했다. 이재의 어머니는 슬퍼하면서도 “가르치다 그런 걸 어떡합니까. 할 수 없지요.”라고 말했단다. 그러자 이만성은 “사실은 죽지 않았고, 나를 얼마나 믿고 맡기나 보려고 그랬네”라고 했단다. 이재는 그렇게 대학자로 키워졌다. 믿기지 않는 얘기지만 교육의 바탕이 믿음이라는 사실을 잘 깨우쳐준다. 딸애를 보면서, 선생님의 영향력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딸애의 인생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3중 불구를 극복하고 위대한 인물로 승화된 헬렌켈러 여사는 그의 선생님 설리번의 작품이었지 않은가. 그래서 그녀는 이 ‘위대한 스승’을 잃고 난 후 이렇게 적었다. “내게 단 한번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설리번 선생님 얼굴을 보고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좋은 선생님은 감사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또한 비난받아 마땅하다. 사람을 버려놓기 때문이다. 한 소년이 담임선생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듣고 있었다. 크레파스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교사는 “도대체 이번이 몇 번째냐”며 다그쳤다. 어려운 가정형편을 차마 말하지 못하는 소년을 향해 교사는 머리를 쥐어박으며 고함을 질렀다. “다음부터는 훔쳐서라도 가져와.” 17년 후 이 소년은 법정에 섰다. 지존파의 대부 김기환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최후진술은 이렇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제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어느 시인의 글이다. “교사는 연을 날리는 사람과 같다. 연이 땅에 떨어지려고 할 때마다 적당히 줄을 당겨 하늘로 향하도록 조절한다. 그리고 한 시도 눈을 떼지 않는다. 연이 푸른 창공에 날아오를 때는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바라본다. 이것이 교사의 마음이다.” 마음속으로 나는 내 딸아이를 바라보는 한 선생님의 눈빛을 그려본다. 이런 상상이 좀 과장된 몽상일지라도 지금 나는 그것을 즐기고 싶다. 아무래도 에스더는 전학시키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