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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
홍명보 묵상(默想)
<이정우 목사·구리 기쁨의 교회 담임목사>

월드컵 때문에 축구가 화제다. 특히 급성장을 한 한국축구가 온 국민을 감동시키고 있다.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우리축구가 확실히 달라졌다. 옛날 같으면 맥도 못쓰고 무너졌을 유럽의 강팀들과 자웅을 겨루는 것을 보면 경이를 느낄 정도다. 그래서 감독 히딩크는 일약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영웅은 또 있다. 홍명보 선수다. 그는 수비수다. 수비수는 공격수와 비교할 때 별로 영광스러운 자리가 아니다. 물론 수비도 중요하다지만 그래도 축구의 맛은 골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수비수는 제2인자가 된다. 동네 조기축구나 아이들을 보면 확실하다. 볼 좀 차는 아이는 공격을 맡고, 못하는 아이는 떠밀려 수비를 맡는다. 구미가 당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축구를 지탱해 주는 힘은 한결 안정된 수비에 있고, 그 중앙에 맏형 홍명보가 버티고 있다. 그가 이끄는 수비가 한국축구의 영광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수비수 홍명보를 보면서, 나는 제2인자의 자리에서 전체를 지탱하고 있는 사람, 그 감추어진 인생의 아름다움을 생각해 본다. 한 사람이 지휘자 레오날드 번스타인에게 물었다. “선생님, 악기 중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게 뭐죠?” 그가 대답했다. “제2바이올린입니다. 제1바이올린을 잘 연주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제1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과 똑같은 열정을 가지고 제2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을 찾기란 어렵습니다. 별로 선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2연주자가 없으면 심포니 자체가 불가능한 데도 말입니다.” 우리에겐 1등이 아니면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카피가 히트하기도 한다. 은메달이나 동메달은 메달로 취급도 안 한다. 역사는 1등만 기억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가? 아니다. 오히려 역사는 그와는 정반대의 진실을 말해주고 있다. 파산 위기의 크라이슬러 자동차 회사를 극적으로 살려낸 로버츠 러츠, 빌 게이츠를 돕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스티브 발머, 모택동을 위해 미련 없이 일인자 자리를 내어주고 참모 역할을 떠맡은 주은래, 첫 번째로 진정한 부통령이라는 인정을 받았던 엘 고어 등등 그 예는 다 헤아릴 수 없다. 모택동과 주은래의 관계를 닉슨 대통령은 이렇게 갈파했다. “모택동이 없었다면 중국의 혁명은 결코 불붙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주은래가 없었다면 그 불길은 다 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리더 속에 있는 불이 허망한 재가 되지 않도록 구체화 한 제2인자 정신이 중국의 역사를 바꾼 것이다. 미 대통령 트루먼은 충실한 참모였던 마셜의 장례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죽으면 마셜이 나를 그의 부관으로 임명하여 그가 나를 위해 했던 그 일을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리더가 죽어서 그의 부관이 되기를 바랄 정도로 마셜은 그렇게 훌륭한 2등이었던 것이다. 속리산 입구에 정이품송 소나무가 있다. 나무가 벼슬을 했으니 엄청 출세한 셈이다. 그러나 만일 그곳에 속리산이 없다면 사람들이 그 한 그루의 나무를 보기 위하여 그곳에 가겠는가? 나무 한 그루 때문에 그곳까지 가겠는가? 한 그루의 거목보다 숲이 더 아름답다. 그리고 그 숲을 이루는 것은 거목이 아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는 다윗왕 때이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그 때를 그리워하며 다윗 같은 성군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다윗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요나단이다. 그는 다윗의 정적이었던 사울왕의 아들이었지만, 다윗의 인물됨을 보고 그를 사랑하여 기꺼이 다윗을 돕는 자의 자리를 택한 사람이다. 나는, 요나단이 이 결단을 하기까지 지새웠을 그의 불면의 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각박한 세상, 기꺼이 2인자의 자리를 택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훨씬 좋은 세상이 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