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1 (월)

  • 흐림동두천 22.3℃
  • 구름많음강릉 21.6℃
  • 맑음서울 22.5℃
  • 구름많음대전 22.1℃
  • 구름많음대구 25.0℃
  • 흐림울산 23.1℃
  • 흐림광주 23.2℃
  • 부산 21.9℃
  • 구름많음고창 23.1℃
  • 제주 25.3℃
  • 구름조금강화 21.6℃
  • 구름많음보은 21.5℃
  • 구름많음금산 22.7℃
  • 구름많음강진군 23.3℃
  • 흐림경주시 24.3℃
  • 구름많음거제 22.5℃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종교칼럼-삶>
히딩크, 인재등용의 리더십
<이정우 목사·기쁨의 교회 담임목사>

월드컵 때문에 큰 축제를 즐기고 있다. 유사이래 우리가 이렇게 기뻐해 본 적이 없단다. 오직 축구 하나 때문에 사람들이 이렇게 하나가 되어 열광하며 기뻐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다. 수백만의 인파가 만든 붉은 바다가 기쁨으로 출렁거리고 있다. 잔치를 즐기면서, 난 히딩크 감독에게 깊이 감사한다. 그가 준 선물이 참으로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냉철하게 그에게서 배우고 싶다. 특별히 그의 리더십은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그 중의 하나가 선수선발 과정에서 보여준 것이다. 우리는 혈연 학연 지연에 매여 고질병을 앓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망국적인 지역주의를 확인한 바 있다. 히딩크는 선수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공정한 인재등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또 그렇게 선발된 선수들의 놀라운 능력을 통하여, 우리의 악습들이 얼마나 우리의 가능성을 가로막고 장래를 어둡게 만드는 지를 보여주었다. 물은 고이면 썩는다. 사회는 열려 있어야 한다. 닫혀 있으면 썩는다. 문은 열어 놓아야 한다. 고질병을 앓는 사회인데도 치유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인재를 등용하는데 실패하기 때문이다. 정체된 역사의 빗장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진 새 인물이 연다. 1815년, 최고의 명성을 날리던 파리 아카데미에 뉴톤과 라플라스의 입자론을 정면으로 비판한 논문이 제출되었다. 광학(光學)의 난제를 하나씩 명쾌하게 풀어나간 이 충격적인 논문을 제출한 사람은 어처구니없게도 지방에서 열차 선로 건설을 감독하던 무명 엔지니어 프레넬(Augustin Fresnel)이었다. 그러나 그의 파동설은 ‘빛의 파동에 필요한 매질 에테르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는 난제를 남겼다. 그로부터 100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당시 물리학은 이 에테르의 난제 속에 갇혀 버렸다. 돌파구는 뜻밖의 외곽에서 열렸다. 스위스의 작은 지방도시 베른 특허국에서 근무하던 알버트 아인슈타인이었다. 그의 특수 상대성원리는 프레넬을 비롯한 고전 물리학의 토대를 송두리째 바꾸고 새 역사를 연 것이다. 프레넬과 아인슈타인 모두 당시 전통 과학연구의 중심지에서 비켜 있었던 까닭에 일류 두뇌들이 당연시하던 이론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전통적 명문의 인재들이 기존의 패러다임에 갇혀 씨름하고 있을 때 이 두 무명의 인재들은 문제의 근원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직시, 이를 바탕으로 획기적인 논리를 창출해 낼 수 있었다. 에도시대 일본은 무사지배사회였다. 이들은 유교정신에 따라 동양의 고전으로 교육받았다. 반면 하급무사들이나 평민들은 절에서 승려들이 경영하는 데라고야라는 학교에 다녔다. 이 데라고야는 에도 후기부터 사립학교인 사주꾸가 되는데 여기서는 영어, 화란어, 상업등의 신학문을 가르쳤다. 상류층 자제들이 유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오히려 하류층 젊은이들이 이러한 사설의숙에서 서양문물을 배웠다. 그리고 그들이 열어놓은 역사가 메이지유신이다. 낡아빠진 유대교의 패러다임에 갇혀서 기독교가 그 원래의 정신을 잃어버렸을 때, 새 역사를 열고자 예수님께서 오셨다. 유대교를 개혁하고자 그는 새로운 일꾼들을 제자로 부르셨다. 예수와 함께 새로운 역사의 빗장을 열기 위해 선택된 인재들은 유대종교의 지도자들이 아니었다.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과 같은 이름 없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은 기존 질서의 틀에서 벗어나 있는 그들을 불러서 3년간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르쳤고 그들은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축제를 즐기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지혜를 얻지 못하면 허망한 쾌락에 불과하다. 그리고 참된 지혜는 역사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방인이 가르쳐 준 이 교훈으로 우리의 고질병을 고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