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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
유발의 노래
<이정우 목사·구리 기쁨의 교회 담임목사>

오랜만에 아이들과 노래방을 찾았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펄펄 뛰었다. 들어가자마자 서로 마이크를 잡겠다며 신경전을 펼쳤다. 우리는 순번을 정해주었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 지겨운(?) 동요메들리를 들어주어야 했다. 한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끄트머리엔 자투리 시간을 서로 쓰겠다며 또 가벼운 실랑이를 벌였다. 마이크 한 번 넘겨주지 않은 불효 막심한(?) 놈들은, 그래도 한이 덜 풀렸는지 영 아쉬워했다. 칭얼대며 집에 온 막내 놈은 자기가 제일 조금 불렀다며 잠투정을 부렸다. 그런 막내를 달래며 아내는 맘껏 노래할 수 있는 나라로 데려갔다. 혼자 중얼거려 본다. ‘노래가 없다면 어떻게 살까!’ 음악을 창시한 사람은 인류의 7대 손인 ‘유발’이란 자다. 성경은 그에 대해서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 즉 음악의 시조로 소개한다. 그는 왜 음악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을까? 그의 아버지 라멕은 살인자였다. 또 두 여인을 거느린 일부다처의 시조였다. 형 야발은 짐승을 잡는 사람이었고, 배 다른 아우 두발가인은 날카로운 무기를 만드는 자였다. 살인자 아버지와 두 어머니, 짐승을 사로잡는 형과, 날카로운 무기를 만드는 아우, 이것이 음악을 만든 유발의 환경이었다. 이런 견딜 수 없이 거친 환경에서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지 않으면 안되었던 유발을 통하여 음악은 시작되었다. 거친 환경에서 지친 영혼을 달래지 않으면 안되었던 슬픈 사연을 담고 시작되었던 것이다. 자신을 위로하고 치료하지 않으면 안되었기에.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거칠어진 세파 속에서 더욱더 음악에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노래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노래를 빼앗는 것을 멀리해야한다. 어떤 사람이 노래가 유달리 아름다운 카나리아 한 마리 갖고 있었다. 여름날, 그는 새를 집에 가두는 것이 너무 한다 싶어 바깥 나무에 새장을 걸어 두었단다. 많은 참새들이 새장에 끌려 자주 나타났고, 카나리아는 곧 깃털 달린 동료들과 즐기기 시작했다. 여름이 다 끝날 즈음에, 그러나 카나리아는 자기 노래를 잃어버리고 참새들의 단조로운 소리만을 흉내내는 것이었다. 참새들에게 자기 노래를 빼앗긴 것이다. 당신의 노래를 빼앗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노래하라. 특별히 자녀들과 함께 노래하라. 되새는 어릴 때, 즉 이른봄부터 노래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고음과 저음은 잘하지만 노래의 끝이 늘 어정쩡하게 끝난다고 한다. 그렇지만 자라면서 점차 실력을 갈고 다듬어가면서 멋진 노래를 부른단다. 그런데 되새가 태어나자마자 어미에게서 떼어내 혼자 자라게 했더니 평생 아주 단순한 한 종류의 노래만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부모는 자녀가 평생토록 노래하도록 가르치는 자이다. 갈수록 세상은 거칠어지고, 그들은 더 많은 노래를 필요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마땅히 불러야 할 노래를 부르는 게 중요하다. 좋은 노래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 자녀들은 우리에게서 자신들의 노래를 익혀가기 때문이다. 참새에게 자기 종(種)의 노래와 다른 종의 노래를 들려주면 참새는 신기하게도 자기 종의 노랫소리만 배운다. 그런데 갓 태어난 참새에게 자기 종의 노랫소리는 들려주지 않고 다른 종의 노랫소리만 들려주면 어떻게 될까? 참새는 제대로 노래하지 못하고 결국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이상한 노래를 하게 된단다. 이런 면에서 부모는 자녀에게 좋은 노래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좋은 노래와 관련해서, 기억해야 할 게 있다. 유발의 노래보다 더 좋은 노래 말이다. 유발의 노래, 그것은 이범선의 ‘묘상’에 나오는 ‘울지 못해 부르는 노래’와 같은 속성이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더 좋은 노래가 있다. 그것은 찬송이다. 이 노래에 대해서 밀턴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멋진 노래는 예전에는 결코 없었다. 하지만 태초의 때에 아침의 아들들이 불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