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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사람>
김두한이 무슨 협객인가?
<이정우 담임목사·구리 기쁨의 교회>

영화 ‘친구’의 감독을 협박해서 수억 원을 갈취한 혐의로 폭력조직 칠성파 권 모씨가 구속되었단다. 자신들의 얘기로 흥행에 성공하자 수 차례 협박해서 거액을 뜯어냈단다. 그들이 ‘모델료’를 요구했다는데,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역시 이것이 조폭의 실상이다. 영화 ‘친구’는 ‘조폭들의 의리’를 예술이란 그럴듯한 기술로 미화한 덕분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 성공이 끼친 정신적 해악을 어찌 다 헤아릴까. 철없는 어른들과 아이들에게 이 영화는 일탈의 교과서가 되었고, 대박을 꿈꾸는 속 빈 감독에게 아류작들을 참고서로 복사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아직도 이 신드롬은 계속되고 있다. 이제 안방까지 들어왔다. 드라마 ‘야인시대’가 그것이다. 그야말로 장안의 화제다. 방영 시간이면 거리가 한산하단다. 안 보는 사람은 그야말로 간첩이다. 내가 보기에 ‘야인시대의 김두환’은 그야말로 완벽한 남자다. 잘 생기고, 마음도 곱고, 감정도 풍부하고, 정의감과 애국심이 독립군 뺨친다. 게다가 그의 주위 사람들도 한결같이 착하다. 그러나 정말 그가 ‘실제 김두한’인가. 아니다. ‘장군의 아들’이라는 건 맞다. 그러나 그는 ‘항일(抗日)의 협객’도 아니고, 뭇 여성의 마음을 빼앗을 만큼 매력적인 인물도 아니다. 그냥 약한 사람 등쳐먹고 쌈질하던 깡패다. 그가 하야시에 대항해서 민족의 자존심을 지켰는가. 아니다. 하야시는 평안도 출신의 선우영빈이란 조선사람이고, 그의 부하들도 대부분 조선인이다. 김두환은 그와 싸운 게 아니고, 자전거 영업소 관리권을 넘겨받는 조건으로 그에게 흡수되어, 그의 용돈을 받아쓰며 살다가, 해방 후 그의 한국 돈과 권총, 일본도(日本刀)를 선물로 받았단다. 차이가 있다면, 하야시가 상인들로부터 뜯은 ‘삥’을 절반만 챙긴 것이다. 해방 후엔 아편 밀매하다 잡혀 옥살이했고, 정치깡패로 변신하면서 우익과 결탁해 노조나 노동자들에게 온갖 테러를 일삼았다. 오늘날 ‘구사대’처럼. 권력의 맛을 알면서 국회에 진출했는데, 그것도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가 ‘사사오입’ 때 보호받은 것이라고. 정치로 공을 세웠다면, 당시 삼성계열사 한국비료공업이 일본에서 사카린 원료를 밀수한 일 때문에 열린 국회에서 부패한 동료들에게 인분을 던져 정치에 이 갈린 국민의 속을 시원케 해준 것 정도다. 그런데 ‘야인시대’를 보노라면 그가 멋있는 독립투사로 등장한다. 철없는 어른들과 아이들은 ‘저렇게 살아도 애국하는구나’ 느낄 게다. 이것은 안 된다. 물론 드라마도 ‘허구(虛構)’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소설적인 허구’가 ‘역사적인 사실’을 다시 빚을 때 ‘왜곡’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러면 ‘역사적인 교훈’을 증발시킨다. 백성이 살려면 역사를 깨달아야 하고, 그러므로 사실을 왜곡시켜서는 안 된다. 기독교의 장점이 여기에 있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의 독특함 중의 하나는, 왜곡이나 미화가 없다는 것이다. 조상들이 다른 신을 좇았던 일, 도적질한 일, 존속을 살해한 일, 심지어 근친상간한 얘기까지…. 예수의 족보에는 창녀들도 나올 정도다. 경건한 말씀들과 행적들로 채워진 다른 경전들과 다르다. 왜 그런가? 그들의 역사(history)는 하나님 ‘그분의 역사(His story)’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말씀하시려는 것이기 때문에 왜곡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놓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는 것이다. 역사는 사실을 버리면 가치가 없다. 쟈크 마리탱은 “아무리 솜씨가 뛰어난 예술가라 할지라도, 아무리 그의 기술이 완벽하다 해도, 우리에게 말해 줄 것이 없다고 한다면, 불행하게도 그의 작품은 가치가 없다”고 하였다. 김두한이 무슨 협객인가. 아니다. 온 국민이 이런 사람에게 매료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