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1 (월)

  • 구름많음동두천 23.1℃
  • 구름많음강릉 21.9℃
  • 구름조금서울 22.8℃
  • 구름많음대전 23.0℃
  • 구름많음대구 25.7℃
  • 흐림울산 24.2℃
  • 구름많음광주 23.5℃
  • 흐림부산 22.5℃
  • 흐림고창 22.8℃
  • 제주 25.1℃
  • 구름조금강화 21.7℃
  • 구름많음보은 21.8℃
  • 구름많음금산 23.3℃
  • 흐림강진군 23.6℃
  • 흐림경주시 25.4℃
  • 흐림거제 22.5℃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종교칼럼-삶>
실내낚시터 유감
<이정우 목사·구리 기쁨의 교회 담임목사>

집 옆에 재미있는(?) 가게가 생겼다. ‘가게’라 불러도 되는 지 모르겠다. ‘실내낚시터’ 말이다. 여유가 없어 자연으로 나가지 못하는 낚시꾼들에게 ‘손맛을 파는 곳’이다. 그 손맛을 보기 위해 지불하는 이용료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사람들이 들랑거리는 것을 보면 성업중인가 보다. 언젠가 TV에서 실내낚시터 장면을 본 기억이 난다. 몇 평 안 되는 어두컴컴한 실내에 물을 대고 빙 둘러앉아 낚시 줄을 드리운 사람들이 보였다. 그때 난 하마터면 울 뻔했다. 그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슬픈 단면이었다. 산천에서 자란 나도 낚시를 참 좋아했다. 중학교 때, 가방은 산 속에 던져놓고 바다나 강가에서 보낸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월척 여부를 떠나서, 파닥거리며 올라오는 고기를 걷어올리는 그 손맛 때문이다. 자연의 품에 안겨서, 나는 그렇게 청년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야말로 옛말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 없이 돌아가는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모두들 그렇게 살아가는데 익숙해져 있다. 아침 출근길에 누가 낚싯대를 매고 걷기라도 한다면, 외계인 보듯 할 것이다. 그저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 이것을 모범적이라고 생각한다. 피카소처럼 말이다. 피카소는 그림 그리는 일에 미친 화가였다. 불과 25세 때 이미 다른 화가들이 평생동안 그릴 그림의 양을 채웠다고 한다. 평생을 그렇게 그림에 매달렸다. 엄청난 돈도 벌었다. 그래도 오직 그림으로만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다가 죽었다. 91세의 나이로 죽을 때 그의 침대에는 크레용이 흩어져 있었다. 멋있어 보이는가. 원래 우리는 이렇게 살도록 만들어졌나. 아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엿새동안 자연만물을 창조하신 후 맨 마지막에 사람을 지으셨다. 그리고 다음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선포하셨다. 그리고 자연으로 사람을 이끌고 놀아주셨다. 자연과 사람과 하나님, 이 세 가지가 함께 어울려 있는 모습이 원형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실내낚시터의 존재’가 되었다. 잘살아보자고, 사람답게 살자고 최선을 다하는데, 문명은 왜 이 모양이 될까. ‘라브리 공동체’ 얘기는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2차대전 후 유럽은 완전히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 전까지만 해도 유럽인들은 그야말로 의욕에 불타서 일했다. 문예부흥과 휴머니즘에 고무된 사람들은, 이성에 기초하여 게으르지 아니하면 인간 혼자서도 얼마든지 낙원을 만들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그 문명의 끝은 처참했다. 2차대전이 일어났고, 히틀러는 전 유럽을 끔찍한 지옥으로 만들었다. 이성을 믿고 밤낮으로 불을 밝혔던 사람들의 문명은 절망 그 자체였다. 바로 그때 프란시스 쉐퍼 박사가 스위스의 알프스 산록에 ‘라브리 공동체’를 열었다. ‘라브리’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피난처, 안식처’란 뜻이다. 이 공동체를 세운 목적은 자연 속에서의 하나님과의 누림을 통해서 지친 영혼들을 회복시키고, 참된 인생의 문을 열기 위한 것이었다. 자연과 인간과 하나님, 이 조화를 통해서 각계의 수많은 지성인들은 유럽의 정신적, 영적 지주들로 거듭났다. 성경 인물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다윗을 말하고 싶다. 이 다윗이 자신의 평생의 삶을 노래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위대한 다윗의 그 부족함 없는 생활은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에서 이루어졌다. 오늘날 우리는 이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를 잃어가고 있다. 그곳으로 인도하는 자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 혼자 죽도록 일하다가 오늘도 ‘실내낚시터’를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