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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평생 광주에 진
마음의 빚 갚아

인권신장 앞장 김승헌 신성치과병원장 20년전 광주항쟁서 아픈 기억 사형수구제 인권운동으로 계승 인권 신장 기여 대통령표창 수상 이십대 초반... 이제 한창 캠퍼스를 누비며 풋풋한 첫사랑의 열병을 앓을 나이. 그러나 민주주의와 독재가 힘 겨루기를 하던 80년대 5,18광주민주화항쟁의 한복판에서 이십대를 맡은 김승헌 병원장(신성치과병원)에게 그런 알싸한 첫사랑의 열병 따윈 사치에 지나지 않았으리라. 제54회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이었던 지난달 10일, 인권신장에 기여한 공로자에게 수여되는 대통령 표창을 받은 김승헌 병원장을 만나 그가 살아온 얘기를 들어봤다. 4,19혁명과 5,16 쿠데타의 영향으로 저마다 민주주의와 독재라는 이름으로 힘 겨루기를 하던 80년대, 당시 김 원장은 전남대 화학과에 재학 중이던 조용하고 평범한 학생이었다. 이렇듯 평범했던 그가 대학 2학년시절 광주민중항쟁의 한 복판에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시민군과 개원군 간의 유혈 충돌을 최소하고자 장례위원회 부위원장과 학생대표 수습대책위원회 상황실장을 맡아 시민들을 설득해 총기를 회수하고 군과의 타협에 나섰다. 당시 주도자들은 감옥에 다 잡혀간 상태였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수습을 하는 방법 밖에 없었죠. 두려웠지만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었어요. 당시 김 원장을 비롯 학생수습대책위의 설득으로 시민들로부터 상당수의 총기가 반납돼 더 많은 희생을 막을 수 있었지만 그일 이후 김 원장은 자기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시작해야만 했다. 진압군이 도청을 진압해 오던 날, 도청 사수를 위해 20여명 가량에게는 총기를 반납 받지 않았어요. 아마 그들은 그날 밤 다 죽었을 거예요. 참으로 섬뜩했던 밤이었죠. 20여년 전 마지막에 총기를 내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지금껏 안고 사는 김 원장은 인터내셔널 엠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 양심수 및 사형수의 인권감시 단체)의 코디네이터로서 사형수 구제를 위한 인권운동으로 미안한 마음을 대신하고 있다. 광주민중항쟁 사태가 수습된 이후 군복무에 자원하는 조건으로 살아남았으나, 운동권 출신이란 명찰이 따라붙어 군 생활 역시 순탄치 못했다. 하지만 군에서의 모진 핍박은 이십대의 앳된 청년을 더욱더 강한 남자로 만들었다. 제대 후 수많은 동료들이 시체가 되어 나뒹굴었던 아픈 기억이 가득한 광주를 무작정 떠나고 싶었던 그는 법대진학을 목표로 대입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목표했던 대로 법대는 아니었지만 3개월의 짧은 준비 끝에 원광대 치의예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치대 입학 후 공부에만 전념했어요. 하지만 죽은 사람들에 대한 죄스런 마음은 떠나질 않더군요. 그런 죄스런 마음이 들수록 그들 몫까지 최선을 다해 살겠노라고 다짐을 하곤 했지요. 김 원장은 원광치대를 졸업한 후 91년 3월 서울에서 치과의원을 개원한 것을 시작으로 97년 지금의 신성치과병원을 설립, 운영해오면서 20여년이 훌쩍 흐른 지금까지도 스무살 초반 죽은 동료들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내겠다던 자신과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있다. 김 원장은 91년 개원 당시부터 지금까지 10여년을 넘게 국제사면위원회의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면서 사형수들의 인권보호 운동으로 동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 풀어내고 있다. 인터내셔널 엠네스티는 각국의 원수나 주무장관에게 편지를 써서 사형수들의 선처를 바라고 그들의 인권 확보를 위해 힘쓰는 국제 비밀기구로 궁극적으로는 사형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단체다. 또 코디네이터는 인터내셔널 엠네스티의 전반적인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현재 전세계적으로 14명만이 활동하고 있다. 사형제도는 국가가 개인에게 저지르는 또 하나의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정부에 의해서 또 다시 폭력행위를 당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앞으로도 사형제도가 지구상에서 없어지는 날까지 지금 하고있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김 원장은 또 인권운동 외에도 앞으로 3년 안에 재료, 제약회사를 설립하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고 서울치대에서 재료학을 전공하고 있다.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있는 재료학분야의 연구를 통해 국산 재료를 개발하고 이를 역수출함으로써 국가 발전에도 기여하고 싶습니다. 이밖에도 김 원장은 장영일 서울치대병원장과 함께 서울치대병원의 독립을 위해 정계의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숨은 노력을 아끼지 않는 등 치과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중지를 모으고 있다. 사회적 격동과 고난의 역사 현장에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수많은 시민들의 생명을 구해냈지만 그 대가로 가슴 깊이 수많은 상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