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9 (토)

  • 흐림동두천 22.5℃
  • 흐림강릉 25.2℃
  • 서울 24.1℃
  • 대전 23.2℃
  • 대구 23.1℃
  • 울산 23.2℃
  • 광주 24.2℃
  • 부산 24.2℃
  • 흐림고창 25.6℃
  • 흐림제주 28.1℃
  • 흐림강화 22.8℃
  • 흐림보은 22.5℃
  • 흐림금산 23.2℃
  • 흐림강진군 24.4℃
  • 흐림경주시 23.5℃
  • 흐림거제 24.3℃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종교칼럼>
초심(初心

새 지도자가 취임했다. 노무현 대통령 말이다. 취임식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빌었다. ‘국민참여의 정부’가 성공적으로 나라를 경영해 주기를. 정말 ‘개혁과 통합을 바탕으로 국민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가 열리기를. 그리고 또 기도한 게 있다. 그가 지도자로서 성공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내가 그를 처음 직접 본 것은 3당 합당이 있던 1990년 1월이었다. 옛 부산상고 자리에서 열리던 야합규탄대회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때 그를 처음 보았다. 당시 부산에서 김영삼씨를 따라가지 않으면 정치생명이 끝나는 데도, 그는 꼬마 민주당을 지키겠노라며 기염을 토했다. 그때 나는 뜨겁고도 신선한 그의 내면의 무엇을 느꼈다.그 해 4월에는 내가 다니던 고신대학 축제가 있었는데, 학생회에서 그를 초청해 강연을 들었다. 만학도였지만 시국에 관심이 많았던 나도 젊은 학생들 틈에 경청했다. 예나 지금이나 그의 연설은 청중을 사로잡는 힘이 있었다.연설이 끝나고 질의시간이 있었는데, 한 학생이 이렇게 도전했다. “의원님, 한가지 묻겠습니다. 의원님은 변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한 때 민주화 진영의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출세하면 변절하는 모습에 우리는 너무나 많이 절망해 왔습니다. 의원님은 그렇게 변절하지 않을 것을 우리가 어떻게 믿겠습니까?” 그는 심각하게 되받았다. “옳습니다. 그 질문은 저에게 심각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전 여러분에게 이렇게 다시 묻고 싶습니다. 이 질문이 왜 저 같은 정치인에게만 해당됩니까? 여러분들은 이 질문에서 제외됩니까? 저는 많은 사람들이 젊은 피가 끓을 때는 민주를 외치다가 시집 장가들어 자식 키울 때면 그저 그런 사람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수도 없이 보아왔습니다. 여러분은 세월이 지나도 지금과 같을 수 있습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도전합니다. 우리 약속합시다.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꽃필 때까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미소짓는 그 날까지, 지금 이 마음을 간직합시다!” 그 날 나는 제법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마음에 각오한 바가 있었다. 그 약속 때문에, 나는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그의 행보에 관심을 가져왔고, 나도 다짐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지금 그에게 점수를 준다면, 우리 정치현실을 감안할 때, A+는 아니더라도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우리 정치 현실에서 ‘바보 노무현’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기적에 가깝다. 그리고 이 기적은 현실정치에서 그가 놓치지 않으려 했던 ‘초심(初心)’에 있었고, 여기에 많은 유권자들이 희망을 걸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그러면 나는 몇 점이나 될까. 내 경우에는 영 낙제수준을 넘지 못한다. 나의 초심의 내용은, 내가 기독교인인 까닭에, 신앙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노무현씨가 지키려고 노력한 정치적 초심이 소외된 계층에 대한 사랑과 민주화였다면, 나의 경우엔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물론 처음 예수님을 만나고 뜨겁게 사랑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좋았고 쉬웠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때때로 자기사랑의 유혹에 떨어질 때가 참 많았다. 그래서 성경말씀이 마음에 찔린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네가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하나님도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하신다.노 대통령이 청와대로 가려고 명륜동 집을 나올 때, 많은 주민들이 송별하였다. 대통령은 “잘 하겠습니다”하며 일일이 손을 잡아주었다. 나는 그가 이번에도 잘 해주길 빌었다. 많은 사람들이 미덥지 못해하는 부분까지도. 그리고 나도 잘 해 보자고 또 다짐했다. 명륜동 사람들이 들고 있던 플래카드에 선명하게 쓰여진 ‘초심(初心)’이란 글씨가 한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