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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삶
구리기쁨의교회 이정우 담임목사

희망 한 두루마리 일요일마다 우리 교회에 오는 걸인이 있다. 형님뻘 되는 사람인데, 예배가 끝나고 교우들과 식사를 마칠 때쯤 되면 어김없이 들르신다. 들어오시면 커피 한잔을 즐긴 후, 수금하듯이(?) 동냥하고 가신다. 그런데 이 분은 다른 걸인들과는 격(?)이 다르다. 생김새나 처신부터가 걸인의 모습이 아니다. 용모나 신체도 준수하고 말이나 태도도 결함이 없는 사람이다. 겉으로 봐선 동냥할 사람이 아니다. 하도 궁금해서 하루는 얘기를 청했다. 그리고 참 놀랬다. 그는 신체가 건강한 것은 물론이고, 대학까지 나왔으며, 모 회사에서 중역을 맡아 일한 경력이 있으며, 인문적인 실력도 상당했다. 영어실력은 나보다 월등했다. 이 사람이 걸인이 된 것은 이런 외면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당한 커다란 실패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한 ‘절망이란 병’이 그의 생의 의지를 녹여버린 것이었다. ‘절망’은 자신을 학대하며 생의 의지를 꺾는다는 면에서 그야말로 비참한 병이다. 쇼펜하우어가 말했던 ‘비참한 벌레 불독개미’처럼. 그에 의하면 불독개미는 머리와 꼬리가 끊임없이 싸운단다. 심지어 몸을 갈라놓아도 싸움이 계속된다. 꼬리는 머리를 휘감고 머리는 꼬리를 문다. 몸이 둘로 나뉜 상태에서도 싸운단다. 자신을 죽일 때까지. 성경에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는 말씀이 있다. 정말 ‘절망이라는 병’은 약이 없는가 보다. 그래서 철인 키에르케고르가 ‘죽음에 이르는 병’을 ‘절망’이다지 않은가. 그는 “절망이란 곧 자기상실이며, 또한 자기 존재의 근원인 하나님과의 관계적 상실”이라 하였다. 사단과의 깊은 연결이 있음을 갈파한 것이다. 사단이 자신의 작전용 도구를 경매한다는 광고를 냈단다. 구매자들이 와서 사람을 파괴하는 여러 무기들을 보았다. 그런데 그 중 ‘비매품’이라고 쓰여진 무기가 눈길을 끌었다. 구매자들이 이유를 물었다. 사단은 이렇게 설명했다. “이것만은 팔지 않는다. 이것은 가장 강력하고 비밀스러운 것이야. 이것은 ‘절망’인데 이것으로 사람의 마음을 뚫으면 그를 마음대로 파괴할 수 있지.” 사람이 절망을 모르고 살 수 없듯이, 희망을 모르고 살 수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절망이 늘 우리 곁에 둥지를 틀 듯이 희망도 늘 우리 곁에서 싹을 틔우고 있음을 보았으면 좋겠다. 나폴레옹의 친구 샤니가 황제의 비위를 거슬러 투옥되고 말았다. 그는 절망하여 벽에다 이렇게 썼다. “아무도 나를 염려해 주지 않는다.” 어느 날 그는 바닥 돌 틈에서 자란 가녀린 싹을 발견한다. 싹이 자라 꽃을 피우는 것을 보고 그는 다시 이렇게 썼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신다.” 이 소식을 들은 왕비 조세핀은 “꽃을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나쁜 사람일 리 없다”고 나폴레옹에게 진언해 풀려나게 했단다. 결국 절망도 희망도 다 마음의 일이다. 나치의 수용소에 대한 기록을 남긴 프랭클 박사의 의 저서 ‘의미를 찾는 인간의 탐색’에 이런 말이 있다. “수용소의 사람들은 두 종류였다. 마음으로 포기한 사람, 그들은 곧 쇠약해졌다. 그리고 소망을 끝까지 가진 사람, 그들은 끝까지 살아 남았다.” 어저께 예배당으로 한 사람이 들어왔다. 심한 장애를 가진 사람이었다. 깡마른 체구에 한 쪽 눈은 실명해 있었고, 다리는 심하게 절었고, 한쪽 팔도 없었다. 불쌍했다. 그러나 그는 걸인이 아니었다. 그의 남은 팔에는 두루마리 화장지가 들려 있었다. 수중에 돈이 없었다. 뒤져보니 칠백 원 뿐이었다. 나는 미안한 마음으로 그것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는 사양하였다. 서너 차례나 내밀어도 그는 한사코 그냥 받지 않겠노라고 총총히 사라졌다. 돌아가는 그의 등뒤에 매달린 ‘희망 한 두루마리’가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