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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
이정우목사/구리기쁨교회 담임목사

온종일 살육의 현장을 보는 게 가슴아프다. 이라크 전쟁소식 말이다. 냉전체제가 끝난 후, 미국은 벌써 네 번째 전쟁을 즐기고 있다. 전쟁을 고집하는 미국의 이유는 대략 세 가지다.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어서 미국과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후세인이 9·11 테러 배후인 알카에다와 연계되어 아랍 테러리스트들을 지원하며, 독재자인 후세인 밑에서 이라크 국민이 고생하니 해방시켜서 민주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엔은 사찰을 단행했다. 사찰단은 대량학살 무기를 발견하지 못했다. 알카에다의 배후 세력이라는 것도 밝혀내지 못했다. 후세인이 독재자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어디까지나 이라크 자국의 일이다. 그러나 미국은 세계적인 반전여론이나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정 따위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힘의 논리로 전쟁을 시작하면서 “우리편을 들지 않는 자는 우리의 적이다.”라며 야만적인 협박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미국의 저의를 다 알고 있다. 손바닥으로 어찌 하늘을 가릴 수 있으랴. 민주주의를 들먹이고, 기독교 근본주의 목회자들을 꼭두각시 삼아 아마겟돈 전쟁을 들먹이면서 세계를 선과 악으로 나누어 ‘악의 축’을 대항한 ‘선의 축’을 구축하는 양 가장하지만, 속셈은 이라크 석유 때문이고, 유럽을 견제하면서 중동과 아시아의 패권을 독점해 가려는 꼼수라는 것을. 전쟁을 일으키는 이유에 대해서 흔히 ‘다섯가지 P의 욕망’을 말한다. ‘과시의 욕망(passion for pageantry)’ ‘소유의 욕망(possession)’ ‘이익의 욕망(profit)’ ‘보호의 욕망(protection)’ ‘애국의 욕망(patriotism)’ 등이 그것이다. 타락한 인생들이 자기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에 욕망은 서로 충돌하고 전쟁은 필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추한 욕망을 선으로 가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부시스러운’ 일이다. 1945년, 태평양전쟁이 끝났을 때다. 맥아더 장군이 동경 시민들에게 한 유명한 연설의 끝부분이다. “온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경제문제입니다. 경제문제는 군대문제입니다. 군대 문제는 정치문제입니다. 정치문제는 정치가의 양심문제입니다. 양심문제는 도덕문제입니다. 도덕문제는 종교문제입니다.” 그렇다. 전쟁은 인간의 썩은 양심과 부패한 종교적 욕망의 결과일 뿐이다. 그러므로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 성경에 보면, 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잡으려는 대제사장의 하인을 쳐서 귀를 떨어뜨린 일이 있었다.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검을 도로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그렇다. 우리는 욕망 때문에 때때로 사랑과 평화의 방법을 포기하고 검을 사용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러나 그 때마다 검을 도로 집에 꽂아야 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욕망을 노예가 되어 검을 뽑아 생명을 빼앗고 인생을 고통 속에 몰아넣었던 자들의 종말이 순탄하지 않았음을 발견할 수 있다. 2차세계대전 때, 독일과 이탈리아와 일본의 삼국동맹은 지구를 온통 화약냄새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전쟁터로 만들었다. 그러나 연합군의 승리로 삼국동맹의 주역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먼저 유태인을 600만이나 학살한 히틀러는 연합군이 한참 독일로 전진해 오던 1945년 그의 지휘 벙커에서 애인 엠마 브라운과 함께 권총으로 자살했다. 극악한 파시스트인 이탈리아의 뭇솔리니는 1945년 연합군에 패전후 국경 밖으로 도망하려다 암살됐다. 신으로 떠받들어졌던 일본의 동조 천황은 1989년 한 인간으로 돌아와 병에 걸려 처참하게 죽었다. 어디 이들 뿐인가. 자신의 욕망 때문에 빼어든 검은 없는가. 그 칼끝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면서도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가장하지는 않는가. 그만하고 칼을 도로 꽂으라. “네 검(劍)을 도로 꽂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