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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
이정우 구리기쁨의 교회 담임목사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린다. 제법 굵은 비다. 정서적으로 난 비를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나 지금 빗소리를 들으며 걱정하고 있다. 아버님 무덤 때문이다. 어저께 아버님 산소엘 갔었다. 지난 겨울에 돌아가신 아버님 무덤의 잔디가 재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해서 흙이 드러나 있었다. 꺼림칙한 마음으로 왔는데, 빗줄기에 씻겨 내리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돌아가시기 전에 우린 아버님께 화장을 말씀드렸다. 우리 신앙으로 볼 때 그게 좋을 것 같아서다. 그러나 아버님은 원치 않으셨다. 속으로 갈등이 좀 있었지만, 가시는 분의 맘 편하게 해 드리려고 그냥 순종했다. 그리고 지금 옛적에 들었던 청개구리의 심정으로 빗소리를 듣고 있다. 근래에 아버님 생각이 많았다. 이상하리만치 자꾸 아버님 생각이 났다. 그때마다 ‘그냥 보고 싶어서겠지" 넘겨왔는데, 요즘 들어 그 까닭을 알 것 같다. 불효 때문이다. 살아생전 아버님께 드려야 할 감사와 사랑을 드리지 못한 죄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슴 아린 것은, 아버님께 당연히 드려야 할 존경과 권위를 드리지 못한 점이다.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셨다. 어렸을 때 무척 똑똑하셨단다. 그러나 가난 때문에 일찍이 배움을 포기해야만 하셨다. 그것은 당신의 한이 되었다. 그리고 불꽃은 고스란히 자식을 향해 불타올랐다. 당신은 간척지로 들어가셔서 바닷물 빼고 논 만들어 육남매를 가르치셨다. 그리고 평생 당신의 뜻대로 세 아들 다 목사 만들어 하나님께 바쳤다. 그러면서도 정작 당신의 호의호식은 꿈도 꾸지 않으셨다. 그렇게 남루하게 사신 인생, 당신은 평생 방 한 칸 없이 사셨어도 큰 아들 잘 못되어 전세방도 없다는 소식 듣고 옛 집터 팔아 내어주셨다. 가시기 전 날, 아버님은 마지막 남은 7천원을 호주머니에서 꺼내시더니 내게 쥐어주셨다. 손자들 과자 사주라고. 그렇게 다 주고 가셨다. 그러나 한은 깊고 뜻은 강하셨기에 원치 않는 엉겅퀴도 많이 내신 인생이었다. 무엇보다 어머님을 돌보지 못하셨다. 어머니는 그저 단순하고 소박한 한 여자였기에 갈등이 많았다. 그 때마다 아버님은 어머님을 보듬지 않으셨다. 그래서 갈등은 골을 만들었고, 이따금씩 폭력이 난무하였다. 불쌍한 어머님에 눈 먼 나는 아버님을 필요이상으로 오해하였고, 아버님께 드려야 할 당연한 존경을 거두기 시작하였다. 무엇보다 신앙적인 갈등이 컸다. 아버님은 도를 닦던 분이셨다. 물론 개종한 후 독실한 크리스천이 되셨지만, 노년이 되시면서 동양 종교적 관점에서 기독교를 재해석하시는 일이 벌어졌다. 목사가 된 세 아들이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굽히지 않으셨다. 이 일 때문에 난 아버님과 몇 차례 다투었고, 필요이상으로 맘 아프게 해 드리고, 아버님의 권위를 흔드는 어리석음에 빠져버렸다. 참 가슴 아프다. 비가 내리는 오늘, 내 마음 골짜기로 흐르는 게 있다. 나를 낳으신 아버지, 나를 안고 당신을 주시기로 뜻을 세우셨던 아버지, 그래서 나로 말씀하시며 내 안에서 사셨던 아버지, 그 아버지의 한 평생이 나의 마음 벽을 스치며 흘러간다. 얼마나 흘러 보내야 씻어낼 수 있을까, 이 불효를! 내가 속은 것이다. 안연의 경우처럼 말이다. 공자의 수제자 안연은 선생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단다. “쳐다보면 쳐다볼수록 더욱 높아지고, 뚫어보면 뚫어볼수록 더욱 굳어진다. 그 고상함과 숭앙심 그리고 신묘한 본체를 파악하려고 했으나 불가능했다. 넓기가 호호탕탕한 하늘과 같았다." 공자의 인격이 그랬기에 더 공경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는 공자와 비할 바 못된다. 그래서 내가 속았다. 아버지를, 자로 재고 판단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철이 없었을까. 어버이의 날에, 하늘 아버지께서 비를 내리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