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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
이정우 구리 기쁨의 교회 담임목사
신(新)잡초론

시골 형님 댁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밟는 시골 땅이라 기분이 좋았다. 논두렁도 걸어보았다. 잡초들이 가득 자라고 있었다. 어렸을 때, 잡초를 제거하느라 애썼던 기억이 났다. 명 질긴 놈들이 여전히 자기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논두렁을 살피면서, 갑자기 논두렁을 지키는 게 잡초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부야 예나 지금이나 잡초만 보면 솎아서 논두렁에 던져버리지만, 버림받은 잡초들은 농부의 논두렁을 비바람으로부터 여전히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논과 밭을 보호하는 두렁을 잡초가 보호하고 있는 셈이다. 이 질긴 놈들에게 하나님은 이 3D업종을 맡기셨는가보다. 얼마 전에, 정치적인 노선도 없이 이 당 저 당 옮겨 다니는 의원들을 철새정치인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조류학회가 반박했다고 들었다. 철새는 분명한 노선이 있다고. 이번에 노 대통령이 개혁에 무익한 의원들을 잡초라면서 농부의 심정으로 솎아달라 했는데, ‘잡초론’도 틀린 것 같다. 식물학회에서 반박해야 할 것 같다(^^). 잡초를 보며 중얼거렸다. “너도 참 소중하구나.” 정말 그렇다. 그저 사람 살기에 좋으면 쓸모 있다고 생각하고 아니면 버리기 때문에 잡초라 불릴 뿐이다. 다 몰인정한 사람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어디 그런가. 산에 가보면 못 생긴 나무들뿐이다. 잘 생긴 나무들은 다 잘려 나가고 남겨진 것들이 산을 지킨다. 홍수 때마다 산사태를 막아주고, 사람들이 오염시킨 공기를 마셔주고 대신 신선한 산소로 되돌려 준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던 효정 스님의 말씀이 맞다. 세상사도 마찬가지다. 똑똑하고 권세 있는 사람들은 민초(民草) 알기를 우습게 안다. 로마의 민주주의와 번영이 노예제 하에서 가능했던 것처럼, 지금 자신들의 풍요 역시 이름 없는 민초들의 땀과 눈물에서 이루어졌음을 모른다. 좋은 때나 나쁜 때나 이 터를 지키는 것은 그저 민초들이다. 나라를 세우는 것도, 잘 난 사람들이 망가뜨린 나라 고생하며 다시 일으키는 것도 민초들이다. 좋은 사람도 민초들이 만든다. 헬렌켈러를 알 것이다. 보지도 말하지도 듣지도 못했지만 인류의 스승으로 절망하는 자들을 수 없이 일으켜온 사람 말이다. 그녀에 관한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가 있다. 헬렌켈러를 키워 낸 사람 설리반을 기억할 것이다. 모두 다 포기한 헬렌켈러를 사랑으로 가르치고 기도하며 일으켜 세워준 사람 말이다. 헬렌켈러를 만든 설리반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녀는 정신병자였다. 미국 매사추세츠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가망 없는 환자였다. 의사들은 그녀에게서 희망을 거두어 들였다. 그런데 어느 날 나이 많아 퇴직하려던 한 간호사가 설리반을 보았다. 늙어서 병원에선 쓸모 없게 된 이 간호사는 설리반을 사랑으로 돌보았다. 이 간호사의 사랑은 앤 설리반을 크게 변화시켰다. 불가능해 보이던 설리반이 나았던 것이다. 얼마 후 설리반은 병원 측으로부터 돌아가도 좋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돌아가지 않았다. 쓸모 없어 보이는 한 어린아이를 보았기 때문이다. 8살의 헬렌켈러였다. 헬렌켈러 배후에는 쓸모 없이 보였던 앤 설리반이 있었고, 앤 설리반의 배후에는 또 그런 한 간호사가 있었다. 쓸모 없어 보이는 민초들이 헬렌켈러를 길렀듯이, 지난 역사를 움직였던 영웅들도 대부분 잡초들과 함께 뒹굴었던 시골출신들이었단다. 그래서 난 잘 난 사람들이 민초들과 하나가 되어 뒹굴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진짜 메시야인지를 물었다.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가서 너희가 보고들은 것을 요한에게 말하되, 시각장애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청각장애인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기쁜 소식이 전파된다 하라.” 예수님은 그렇게 민초들과 뒹굴며 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