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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삶-
이정우 구리 기쁨의 교회 담임목사
“너희들은 행복한 줄 알아라”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우리 가족은 저녁 소풍을 다녀왔다. 집 근처에 있는 작은 공원인데, 호수 주위로 산책로를 만들고 나무들을 심어 놓은, 제법 아담한 곳이다. 지척에 있는데도 마음이 분주해서일까. 좀처럼 틈을 내지 못했다. 모처럼의 나들이라서, 우리는 기분을 내려고 김밥도 싸고 피자도 한 판 주문을 했다. 잔디밭에 김밥과 피자를 펴놓았다. 신나게 먹었다. 킬킬거리며 김밥과 피자를 배터지게(?) 먹었다. 옆으로 사람들이 뛰어다녔다. 살 빼느라고.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우리는 그것이 못할 짓이라는 것도 몰랐다. 실컷 먹고 나니 기분이 부풀었다. 우리도 산책을 하자며 일어섰다. 그때였다. 나는 불현듯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행복한 줄 알아라!" 그러자 아이들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투로 말했다. “뭐가요?" 내가 이 말을 한 이유는, 옛날 생각이 나서다. 신록의 계절, 내가 어렸을 때 이 계절은 잔인한 때였다. 먹을 것이 바닥나는 춘궁기(春窮期), 그 잔인한 보릿고개로 들어서는 때였다. 학교 갔다와서 시렁에 매달린 꽁보리밥 한 그릇 푸고, 채전에 나가 시퍼런 고추 몇 개 따나가 반찬 삼아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그것도 사실 황송한 만찬이었다. 그 때의 신록의 계절은, 꿈과 희망으로 설레던 때가 아니었다. 아이들의 맘을 설레게 했던 것은 그저 먹을 거리였다. 찔레였다. 삘기였다. 그리고 싱아와 더덕, 칡뿌리와 송기였다. 4, 5월이면 갈무리 해두었던 감자며 고구마도 얼추 다 먹고, 남은 것이라곤 귀퉁이가 시커멓게 썩어 들어간 것들뿐이었다. 이 맘 때면, 늘 하교길이 늦어졌다. 들길 산길 헤매느라고. 꺾은 송기를 겨드랑이에 수북하게 낀 아이, 칡뿌리를 질겅질겅 씹으며 즙을 질질 흘리며 다니던 친구, 책보와 바지 주머니에 삘기와 싱아를 가득 채우고 웃던 친구들…. 요즘도 진달래꽃이나 찔레를 꺾어 씹어 볼 때가 있다. 씁쓸하고 풋풋한 향기가 아직도 낯설지 않다. 풀을 씹어 먹는 아빠를 아이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본다. 먹어 보라고, 맛있다고 권하면 도망친다. 우리 민족의 가장 큰 관심사는 ‘먹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인사말이 “진지 드셨습니까?" “밥 먹었는가?"였을까. 만나서 먼저 확인하고 싶은 게 먹는 거였다. 속담도 가지가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산 입에 거미줄 치겠나?" 그만큼 먹고살기가 어려웠단 얘기다. 흥부전에서 흥부가 제비의 박씨를 심어 보름 달만한 박을 얻은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 박을 타는데 금은보화와 함께 쏟아진 게 있다. 뒤주다. 뒤주가 뭔가. 옛날 쌀통이다. 그런데 그 뒤주는 보통 뒤주가 아니라 퍼내고 또 퍼내도 하루만 지나면 다시 고스란히 채워지는 신비한 뒤주였다. 착한 흥부에게 주어진 복이, 쌀이 계속 나오는 뒤주였다는 사실은 우리 민족의 행복과 불행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너희는 행복한 줄 알아라!" 배터지게 먹고 난 아이들에게 이 말을 했다가 ‘무슨 자다가 봉창 뒤지는 소리냐"는 투로 보는 아이들을 대하면서, 격세지감 이상의 무엇을 느낀다. 과연 지금도 “너희는 행복한 줄 알아라!"는 말이 유효한가. 언젠가 딸아이에게 나의 어렸을 때 얘기를 해 주었더니 되레 이렇게 말했다. “아빤 우리보단 행복했네요!"라고. 배고파서 불행했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만큼은 실컷 먹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자식의 행복을 위한 부모의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 부모의 땀의 결과를 먹고 배부른 아이들이 이제 부모의 때를 그리워하며 부러워하고 있다. 돌아오면서 자꾸 성경 말씀 한 구절이 맴돌았다. “너희는 썩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위해 일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