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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삶 - 생각 때문에 죽는다
<이정우 담임목사·구리 기쁨의 교회>

“목사님, 뉴스 보셨어요? 정몽헌 씨가 자살했대요 글쎄.” 느닷없는 전화에 놀란 나는 벌떡 일어나 TV 앞으로 달려갔다. 한참을 그렇게 난 브라운관에 고정됐다. 재벌총수의 투신자살, 월요일 아침을 강타한 이 충격적인 소식에 놀란 가슴은 아직도 진정되지 않았다. 가히 ‘자살 신드롬’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살고 싶다고 애원하는 자식을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뜨리고 자신도 투신했다는 주부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경제적인 고통 때문에 자살했다는 뉴스가 줄을 잇고 있다. 자료에 의하면, 지난 해 자살한 사람이 1만3,500명으로 하루 36명 정도다. 이것도 엄청난 숫자인데 올해는 비교가 안 된단다. 신용불량자가 300만 명이 넘고 지원금으로 연명하는 사람이 100만이 넘어서면서 상당수의 사람들이 경제적인 상실감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택하고 있다.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급기야 대재벌의 총수까지 대열에 합류하는 견딜 수 없는 세상을 목도하고 있다. 고통이 오죽했을까. 그 가슴아픈 사연들을 헤아리면서도, 그 저변을 지배하고 있는 죽음의 문화에 새삼스레 치가 떨린다. 그저 많이 가져야 성공한 인생이라 인정하는 세상, 그 돈과 권력과 명예 때문에 온 몸을 던지도록 하는 세상, 그러다 그것을 잃거나 빼앗기면 죽는 게 낫다고 유혹하는 세상, 이것은 사단이 벌이는 죽음의 굿판이다. 갑자기 고골리라는 사람이 쓴 단편소설 ‘외투’가 생각난다. 과거 러시아의 수도인 페체르부르크에 아까끼에비치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 이 노인에겐 인생의 분명한 꿈이 있었다. 사람들이 그 노인에게 “당신의 평생 소원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으면 그는 주저하지 않고 매번 이렇게 대답했다. “내 인생의 목표는 아주 고급스런 외투를 갖는 것이오.” 노인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평생 동안 일하고 저축했다. 드디어 그는 80 루블의 돈을 저축해 꿈에 그리던 그 고급 외투를 샀다. 그 날 노인은 일생의 꿈을 이룬 감격에 너무나 흥분하고 기뻤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외투를 사 가지고 집으로 오다가 그만 강도를 만나 그 고급 외투를 강탈당했다. 노인은 절망했다. 그에게 있어서 그 외투는 단순한 옷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의 인생이었고 생명이었다. 노인은 깊은 좌절의 늪에 빠졌고 너무 상심한 나머지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 이 이야기를 추억하며 나는 이렇게 뇌내어 본다. ‘누가 이 노인에게 외투 한 벌에 인생의 의미를 부여해 주었는가. 이 우스꽝스러운 지식은 어디로부터 왔는가.’라고. 분명히, 강도가 훔친 것은 노인의 인생도 행복도 아니다. 추위를 이길 외투 한 벌뿐이다. 노인이 잃은 것은 외투 한 벌뿐이다. 노인은 바로 자신의 생각 때문에 죽은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을 주입시킨 자는 자신의 얼굴을 감추고 음지에서 미소짓고 있다. 아아, 지금 그 노인의 몹쓸 생각이 망령처럼 떠돌며 변형된 고급외투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좋은 아파트, 고급 승용차, 높은 자리를 자신의 가치로 추구하게 한다. 모두가 ‘소유가 행복’이라는 우스꽝스런 종교를 신봉하도록 하고 있다. 이 종교의 신봉자들에게 있어서 에리히 프롬의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고 존재에 있다”는 외침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그리고 인생의 울타리를 벗어나올 때에야 다음의 이야기를 실감하며 슬피 울 것이다. 여우 한 마리가 포도밭 주위를 돌며 안으로 들어가려고 골똘히 생각했다. 그리하여 사흘을 굶어 몸을 홀쭉하게 한 다음 울타리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여우는 맛있는 포도를 마음껏 먹었다. 그러나 다시 나오려하니 배가 불러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우는 다시 사흘을 굶어 몸을 홀쭉하게 한 다음에야 간신히 빠져나왔다. 여우는 중얼거렸다. ‘결국 배가 고프기는 들어갈 때나 나올 때나 마찬가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