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일에 얽매여
헤어나지 못하는게 아닐까
3일정도 친구들과
눈 딱 감고 놀아보고 싶다
K형!
어느새 가을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바바리코트 깃도 세우고 길 위에 떨어진 낙엽도 몇 잎 주워 옷에도 붙여 보고 얼굴 가득 우수도 찍어 바르고 온몸에는 파스텔 톤의 코스모스로 꽃단장도 해보는 허무와 허전과 쓸쓸함이 낭만과 더불어 뒤섞여 있는 그런 계절입니다.
K형!
눈이 시리도록 파란가을 하늘을 바라보다가 문득 사람 사는 일이란 과연 무엇인가하고 회의에 빠졌습니다. 순간 간단한 답하나가 둔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결국 산다는 것이 고작 벌고 먹고 쓰고 싸는(배설)일의 단세포적인 그런 일이 연속적으로 반복되는 단순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굳이 먹는 일을 쓰는 일에서 따로 떼어 놓은 것은 먹는 일이 생존과 직결되기에 특별우대를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일을 해 버는 일과 그것을 쓰면서 즐기는 일 사이의 비율은 어느 정도가 합당할까에 대해서도 의문스러워졌습니다.
그동안 너무 한쪽에 치우쳐서 열심히만 살아온 것 아닌가 해서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정말 즐겁고 유쾌한 일이 무엇인가도 궁금해집니다.
어떤 사람은 버는 일이 너무 버거워 먹는 일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야말로 해가 지는지 달이 뜨는지 봄이 오는지 가을이 가는지 모르고 머리카락에 흰 서리가 내려도 거울한번 보지 못하고 하루 종일 동당동당 거리며 정신없이 살아갑니다. 치과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우리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환자들 진료에 힘을 다 빼고 세미나다 뭐다 하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동분서주하다가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면 세상이 온통 내 것인 양 기고만장해 떠들다가 집에 돌아오면 마치 병든 닭 마냥 픽! 쓰러져 잠이 들고, 다음날이면 하지 않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듯 강박관념 속에 미처 다하지 못한 숙제라도 하는 양 끽 소리 없이 쪼그리고 앉아 어제 하던 일을 변함없이 되풀이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개원한지 20년이 다 되도록 제대로 놀아본 적이 없는 것 같고 또 놀려고 하면 더 바빠졌던 기억밖에는 없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좋은 직업을 가졌다는 것에 그나마 위안을 해 봅니다.
또 설령 잘 번다한들 몸이 아파 제대로 먹을 수 없다면 또 얼마나 답답한 일이겠습니까? 아픈 사람이 하나 없어 보여도 병원에 가면 모두가 아픈 사람이고 잘 먹는 사람도 절식을 시키고 있어 더러는 먹는 일 자체가 희망사항이고 그림의 떡이니 건강할 때 제대로 먹고 즐기라던 선인들의 말이 참으로 실감이 납니다. 먹는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면 뭐 하러 그렇게 열심히 살겠다고 발버둥을 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다고 마구 먹지는 마십시오. 먹고 얹히게 생긴 것은 도무지 드시지 마십시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잘 벌고 잘 먹는데 쓰는 일에 서툴러 낭패를 보는 일을 여럿 보아왔습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데 간혹 갈잎이 먹고 싶어 외도하다가 그간에 힘들였던 평생의 공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는 일들을 종종 보아왔습니다. 간혹은 잘 되는 경우도 있지만 잘못됐을 때는 참으로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일에는 다 그 방면에 선수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다른 일에 선수가 될 수가 있겠습니까? 빛깔 좋고, 크고, 맛있고, 값도 싼 사과는 없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이 단순한 말뜻을 헤아려보며 그저 주어진 일에 만족해 가며 열심히 사는 모습이 더 좋아 보입니다.
잘 벌고 잘 먹고 잘 쓰는 일 말고도 어떤 사람은 나머지 한가지일이 문제가 돼 괴로움을 호소합니다. 생리적으로 중요한 일중의 하나가 배설의 문제입니다. 여러가지 배설의 기쁨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축복중의 하나라고 하는데 허구한 날 장이 좋지를 않아 설사, 변비로 고생한다하면 그 고통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아무튼 위 네 가지 일만 잘하면 사는데 큰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