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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삶/ 이정우 구리기쁨의교회 담임목사

실패가 은혜 될 때까지

 

저녁예배를 마치고 동역 목회자 둘이 긴급회의를 했다. 한 노부부의 딱한 사정 때문이었다. 한 달 전부터 우리교회에 출석하는 분들인데 거처할 곳이 없어서 이곳 저곳을 배회하신다는 것이다. 사정은 대략 이렇다. 이 분들은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난해까지만 해도 조그만 가게를 의지해 그럭저럭 사셨단다. 그런데 연초에 갑작스레 부도에 휘말려 그만 빚더미만 끌어안고 길거리에 나앉게 된 것이다.


호구지책을 위해 포장마차를 시작했는데 자리도 안 좋고 음식솜씨랄 것도 없으니 신통치도 않은 것은 당연하고, 노구에 여기저기 쑤시고 아파서 고생거리밖에 안 되는 모양이다. 문제는 당장 잠잘 곳이 있어야 하는데 마땅치 않으신가 보다. 지금까지 시집간 딸네 집에서 그럭저럭 버텨왔는데, 이제 그것도 여의치 않아서 여간 힘드시지 않단다.


목회하면서 이런 분들을 대할 때마다 가슴도 아프고 또 도울 방법이 없으니 난감하기 그지없다. 개척교회의 재정적인 형편이나 시설이랄 게 뻔한 것이어서 마땅히 도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사정만 나누고 한숨만 내쉬다 기도하고 일어섰다. 불편하지만 예배당의 자모실에서 임시로 기거하시도록 하고. 참 찹찹한 저녁이었다.


목회를 하면서 이런 경우를 많이 본다. 그때마다 실패란 참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노인들의 실패는 더 그렇다. 너무나 비참하다. 더 당혹스러운 것은 마음도 착하고 신앙생활도 잘하는 사람들이 이런 일을 당할 때이다. 이런 경우 당사자뿐만 아니라 목회자도 답답하기 그지없다. 육체의 문제 하나도 간단한 공식으로 풀리는 게 아니듯이, 내면의 세계도 그렇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기도가 매끄럽지 못하다. 하도 답답해서 하나님께 불평하기도 하고 불경스럽게 따져보기도 한다. 그런다고 하늘에서 무슨 돈 다발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신비한 음성이 들리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 그저 기다려야 되고 그렇게 눈물 흘리며 하 세월을 보낸 후에야 소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엎드려 감사하는 법이다. 인생이란 이해하고 배우는 부분도 있지만, 경험하고 배우는 부분도 많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깊은 고난의 터널을 통과한 한 분의 말 한마디가 내 마음속에 무게 있게 가라앉아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분은 IMF이전에 주식에 손을 댔다가 완전히 패가망신한 경우다. 설상가상으로 셋째 아이가 태어났는데 다운증후군에다 백혈병이 겹쳐 나왔다. 그 뿐 아니라 심장도 안 좋고 근육의 대부분이 이완되어 흐느적거리는 아이였다. 병원에서도 손을 들 정도였다.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을 게다.


이런 일을 당하자 사람들이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가족도 친구도 멀어졌다. 배신감까지 겹쳐서 이중 삼중의 고통으로 긴 세월을 몸부림쳐야 했다. 그래도 의지할 곳이라곤 하나님과 교회밖에 없다 생각돼 온 교우들과 더불어 기도로 자신을 반추하며 인생을 곱씹기 시작했다. 긴 싸움 끝에 위기를 벗어나 평안을 찾았다. 그리고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고난을 통과하고 나니까 사람과 하나님을 좀 알 것 같습니다.”


성경에 욥이라는 사람이 나온다. 이 사람은 부자였고 또한 신앙 좋은 동방의 의인이었다. 부자이면서 의인이라니 얼마나 훌륭한가. 그런데 그런 그에게 어느 날 환난이 닥쳐왔다. 열 자식은 다 벼락맞아 죽고, 재산을 다 불에 타고, 자신은 문둥병에 걸려 잿더미 위에서 슬피 우는 신세가 되었다. 이에 아내는 저주하며 떠나버렸고, 친구들은 숨은 죄가 있을 거라며 그를 괴롭혔다.


그렇게 하 세월을 보내고 나서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습니다만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이런 사람의 경험을 누가 감당하겠는가. 그래서 우리들은 때때로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실패도 은혜입니다.” 그러니 그 실패가 은혜가 될 때까지 기다리며 친구가 돼 줘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