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8 (금)

  • 구름많음동두천 20.9℃
  • 구름조금강릉 22.6℃
  • 구름많음서울 23.0℃
  • 맑음대전 20.3℃
  • 맑음대구 20.3℃
  • 맑음울산 21.7℃
  • 맑음광주 20.0℃
  • 구름많음부산 21.2℃
  • 구름많음고창 20.0℃
  • 흐림제주 21.5℃
  • 구름많음강화 19.7℃
  • 맑음보은 15.8℃
  • 맑음금산 18.5℃
  • 맑음강진군 18.1℃
  • 맑음경주시 19.7℃
  • 맑음거제 20.1℃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종교칼럼-삶, 구리기쁨의교회 이정우 담임목사/‘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들으며

베르디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듣고 있다. 제일 좋아하는 곡 중의 하나다. 언제 들어도 참 좋다. 노래라는 게 보통 몇 번 들으면 익숙해지고 그러다 차츰 싫증이 나는 법인데 이 곡은 들을수록 감동이 깊어지는 것을 느낀다. 특별한 기교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이한 악기의 배열이나 현란한 곡조의 변화도 없는데, 늘 가슴속으로 깊이 스며든다. 한 때는 이런 특별한 느낌에 대한 이유를 골똘히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것은 일종의 공음(共音) 같은 게 아닌가 싶다. 마치 피아노와 기타가 음을 두고 서로 어울리듯이…. 피아노의 한 음을 두드리면 누가 기타 줄을 뜯지 않아도 그 음에 맞는 기타 줄이 저절로 진동하며 울듯이…. 그렇게 베르디의 무엇이 나의 내면과 공감되는 것을 느낀다. 이러한 공감은 아마 베르디의 실존적인 무엇과의 어울림일 것이다. 그것을 나는 아픔이라 믿는다.


베르디는 아픔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한때 음악을 포기하려고까지 했단다. 베르디가 음악가로서 명성을 떨친 것은 오페라 ‘나부꼬’부터였다. 베르디는 첫 오페라 ‘산 보니파치오의 백작 오베르토’로 호평을 받고, 다음 작품 ‘왕국의 하루’를 작곡할 무렵 부인과 아들의 연이은 죽음을 겪었다. 그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는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때 스칼라 극장의 주인 메렐리가 실의에 빠진 그에게 의미 있는 대본을 건네준다. ‘나부코’의 대본이었다. 메렐리는 그것을 베르디의 책상 위에 슬그머니 두고 갔다. 어느 날 낯선 대본을 보던 베르디는 그 이야기에 매료된다. 내용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것으로 바벨론으로 잡혀간 유대인들의 좌절과 희망의 이야기였는데, 베르디는 이 이야기에 도취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멜로디를 붙여 나갔다.


“날아라 생각이여! 금빛 날개를 달고…. 비탈과 언덕에서 날개를 접어라. 그곳은 부드럽고 온화한 공기 조국의 공기가 향긋한 곳. 맞이하라. 요르단 강둑과 무너진 탑 오, 내 조국, 빼앗긴 내 조국…” 1842년 3월 밀라노의 스칼라극장에서 초연된 ‘나부코’는 때마침 오스트리아의 압정 하에 있었던 밀라노 사람들의 가슴에 큰 감화를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포로 유대인들과 같은 처지로 여기며 눈물로 공감한 관객들을 통해 국가처럼 불려지기 된다.


결국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조국을 잃고 핍박 속에서 희망을 꿈꾸던 히브리인들의 아픔과 베르디의 아픔의 공음이었고, 또 그렇게 밀라노의 사람들에게 공감된 것이었으며, 오늘 나의 마음으로 전해지는 줄이다. 그리고 그 줄을 타고 전해진 것을 삶의 질곡에서 맛보는 아픔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아픔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를 공감시키고 감화시키는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감화력은 업적에서 나오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가 삼킨 눈물과 절망의 깊이에서 생겨나는 무엇이다. 깊이만큼 자라난 그늘의 꽃이 사람들에게 강한 향기를 품어내는 것이다. 도스토엡스키의 ‘죄와 벌’의 감동은 그가 사형수의 고통을 통과한 사람이었기 공음되는 것이며, 베토벤의 ‘운명’에서 느끼는 전율은 그가 수많은 실연과 실음(失音)의 어둠을 타고 전해지는 공감이며,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에서 느끼는 감화는 ‘움직이는 종합병원’으로 불렸던 그녀의 ‘13년 동안의 침대’에서 울려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사람들은 데이비드 브린클리가 말했듯이 “하나님은 가끔 우리 앞에 빵 대신에 벽돌을 던져놓기도 하는데 어떤 이는 원망해서 그 벽돌을 걷어차다가 발가락이 부러지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그 벽돌을 주춧돌로 삼아 집을 짓기도 한다.” 그렇게 그 터널을 지난 후에 던지는 한 마디는 사람들의 마음에 큰 감화를 일으킨다. 아아, 어떤 위대한 사람들의 가슴을 통과한 아픔은 때때로 얼마나 아름다운 선율이 되어 두고두고 사람들을 감화시키는지! 마치 진주조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