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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구리기쁨의교회 이정우 담임목사/고독한 사람들에게

고독(孤獨)한 사람들에게


한 사람으로부터 가슴아픈 사연을 들었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그는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지위와 돈을 얻었고 가정에서도 괜찮은 남편과 아버지로 지냈단다. 그런데 3년 전에 실패해서 사업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됐는데, 재기의 몸부림 끝에 지금은 물리적인 환경은 다 회복됐지만, 실패의 과정에서 받은 상처가 속병이 돼버려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상처는 실패가 아니었다. 사람에 대한 불신과 이로 말미암는 고독감이었다. 실패로 인해 지인들이 다 떨어져나가는 충격을 받았단다. 이유들이야 다 있지만. 무엇보다 아내와 아이들의 태도가 더 문제가 됐다. 어려울 때 힘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찌르는 칼이었단다. 이를 갈고 재기했지만, 맘 둘 곳 없어진 이 사람은 고독의 늪에 빠져 깨어진 자존감을 쓸어안고 있었다.


고독이란 게 실존으로 드러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인간은 근본적으로 고독하다! 이것을 보여준 그림이 있다. 1979년 뉴욕에서 일본의 유명 사진작가의 사진전시회가 있었다. ‘한 인간의 고독’이라는 부제가 붙어있었다. 그림의 내용은 이러했다. 뉴욕의 흑인들의 뒷골목이다. 불꺼진 석유난로가 있고 새벽녘에 뿌옇게 창가를 찾아오는 냉기만이 가득한 한 칸 방에 한 노인이 흰 벽을 향하여 담요를 뒤집어쓰고 누워있다.


머리맡에는 전화가 한 대 놓여 있었다. 이 전화가 바로 사진의 초점이다. 밀폐된 방안에 외부 세계와 유일하게 연결된 이 전화선이 눈에 띈다. 그리고 이 전화는 어김없이 하루에 한 번씩 벨을 울린다. “밤새 별 일이 없으셨습니까?” 이 전화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아닌 장의사의 문의 전화이다. 응답이 없으면 죽은 줄 알고 실어가려는 앰뷸런스도 대기하고 있다. 죽음을 확인하려는 전화선 외에는 어느 것도 이 노인과 연결되어 있는 게 없었다.


이런 인간의 고독의 내면적인 얼굴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 ‘현대인의 고독’을 쓴 칼 로저스는 두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상태라고 한다. 이것은 결국 자기를 미워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고독이란 자기를 내어줄 만한 상대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타인에게 자신을 내어놓지 못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 했다. 물론 후자의 경우도 결국 자신을 소외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은 당연하다. 앞의 사람이 이 경우인 것 같다.


그래서 루멜 하우스는 그의 ‘Man"s Need and God"s Actions’라는 책에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고독한 존재다. 그 고독을 먼저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며 이렇게 충고한다. 첫째는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는 것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사랑해 주겠는가. 두 번째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주문한다. 이웃의 가치와 존엄을 인정할수록 자신의 존엄과 가치도 회복된단다.
문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이 문제에 대한 처방이다. 이에 대해 로멜 하우스는 신앙적인 믿음을 추천한다. 결국 절대적 신뢰의 대상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실례를 십자가의 사람에게서 발견한다. 예수님이다. 그는 죄 가운데서 자신과 사람들에 대해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평생을 그렇게 불살랐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영광이 아니라 십자가로 돌아왔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았다. 그는 얼마나 소외됐을까. 그러나 그는 고독과 외로움의 눈물을 남기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의 고백을 들어 보라.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그에는 끝까지 신뢰할 수 있었던 대상이 있었던 것이다. 그의 자존감과 인간사랑의 근원이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고독한 사람들에게’ 그가 던지는 메시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