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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구리기쁨의교회 이정우 담임목사/“나는 나다 (I AM WHO I AM)”


‘아마데우스’를 다시 봤다. 내가 참 좋아하는 영화다. 이 영화의 백미중의 하나는 모차르트와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괴로워하는 살리에르에 대한 묘사다. 그는 이렇게 독백한다. “모차르트, 그 젊은 놈은 내가 목숨을 걸고 매달리는 음악에 놀이하듯 가볍게 접근한다. 나는 음악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버릴 각오가 돼 있다. 그러나 그는 놀 것 다 놀고 여자와 뒹굴다가 남은 시간에 낄낄대며 곡을 쓴다. 그런데도 그의 음악은 불후의 명작이고 나의 곡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내게 음악을 준다면 온 생명을 다 바쳐 하나님을 경배하겠다고 다짐했건만, 어쩌면 이다지도 불공평하단 말인가!”


그의 표정에 드리워진 불행의 그림자가 가슴 아프다. 그의 음악 때문이 아니다. 난 이 영화에서 모차르트의 천재성뿐만 아니라 모차르트를 꿰뚫어보는 살리에르의 또 다른 천재성에 놀랐다. 그것이 모차르트와 잘 어울렸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참 좋은 선물임을 왜 몰랐을까. 그렇다. 그것은 ‘비교’ 때문이다. ‘서로 다른 존재’를 ‘하나의 기준’ 위에 놓고 우열을 가리는 어리석음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난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참 맘에 안 든다. 놀랍게도 대게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을 거북이라고 생각하고 ‘거북이처럼 부지런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토끼를 따라 잡을 수 있다’며 스스로를 위로 받는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하는 아이를 우리는 칭찬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를 보여준다.


생각해 보라. 뭍에서 뛰어다니는 토끼와 물에서 헤엄치는 거북이가 왜 ‘달리기’로 ‘우열’을 가려야 한단 말인가. 한 한국 교수가 미국의 어린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한국의 대표동화라며 들려주었단다. 그러자 이야기를 들은 한 아이가 벌떡 일어서더니 이렇게 외치더란다. “foolish!” 그러나 우리들은 중간에 토끼가 잠을 자면 거북이도 이길 수 있다고 속인다. 그리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잠자는 토끼를 깨우지 않고 몰래 지나쳐야 한다는 비겁한 논리를 강요하기까지 한다.


토끼는 토끼이고 거북이는 거북이다. 그러므로 토끼는 토끼로서 거북이는 거북이로서 인정받아야 한다. ‘서로 다른 두 존재’에게 ‘한 가지 기준’을 들이대면 ‘상처라는 독버섯’이 자라게 되고 결국 ‘불행이라는 독’을 추수하게 된다. 이것은 목사와 씨름선수를 모래 판 위에 올려놓고 비교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오늘날 모든 아이들을 ‘공부’라는 모래 판 위에 올려놓는 교육환경은 그래서 참으로 어리석고 추악한 짓이다.


그러므로 ‘자기다움’을 발견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랐을 때의 일이다. 떨기나무가 불에 붙었는데 이상하게 타지 않고 있었다.
확인하려 가까이 갔을 때 그는 신의 음성을 듣는다. 모세는 그 음성의 이름을 물었다. 이때 하나님이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셨다. “나는 나다.(I AM WHO I AM.)” 이것은 세상 어느 신과도 비교될 수 없는 절대자로서의 자기선언이었다. 그로부터 나온 우리도 그러므로 “나는 나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자존감의 주소가 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이는 “우리는 그분의 작품들”이라는 뜻이다. 이 ‘작품’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포이에마’, 영어로는 ‘poem’이다. 즉, 시(詩)라는 뜻으로 같은 뿌리에서 나온 단어이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예술가들이 그러하듯이 작품으로 만드셨다. 성경은 그 결과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감회를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 말은 “하나님이 만족하셨다”는 뜻이다. 이 성경의 시각을 나의 관점으로 받아들일 때 본 회퍼의 고백처럼 “주님이 나를 만드셨습니다. 나는 주님의 작품입니다.”고 고백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