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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한마음선원 주지 혜원 스님(조계종 중앙종회의원)나도 밭을 간다


요즘같이 아지랑이가 아롱거리고 대지에 수많은 생명들이 꿈틀거리는 이른 봄날, 붓다가 한 바라문의 집으로 탁발을 갔다. 마침 농번기를 맞이해 온 마을이 바쁜데, 부처님이 탁발하러 온 걸 못마땅하게 여긴 바라문이 이렇게 물었다.


“사문이여, 나는 밭 갈고 씨 뿌려 내가 먹을 양식은 내가 마련한다오, 당신도 스스로 밭 갈고 씨 뿌려 당신 먹을 것을 스스로 마련하는 게 어떻겠소?”
이에 붓다가 대답했다


“바라문이여,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려 양식을 마련한다오.?
“그게 무슨 말이오, 난 당신이 씨 뿌리고 밭가는 모습 한 번도 못 봤는데?”
붓다는 대답 대신 다음의 게송을 읊었다.

믿음은 내가 뿌리는 씨
지혜는 내가 밭가는 쟁기
나는 몸에서 입에서 마음에서


나날이 악한 업(業)을 제어하나니
그것이 내가 밭에서 김매는 것
내가 모는 소는 정진이니 가고 돌아섬이 없고
행하여 슬퍼함이 없이 나를 편안한 경지로 나르도다.
나는 이리 밭 갈고 이리 씨 뿌려


감로(甘露)의 열매를 거두노라.

마음은 누구에게나 갖춰져 있는 에너지의 보고이다. 끌어 쓰는 작용에 의해 갖가지 현상을 창조해낸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함도 이러한 마음의 오묘한 작용을 말하는 것이리라. 형체가 없는 마음은 개체 안에 갇혀있거나 단절돼 있지 않다. 그래서 만물은 서로 연결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무엇인가를 청탁하려고 돈 뭉치를 내밀면서 하는 말이, “이건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더란다. 그러자 청탁을 받은 이가 “어떻게 아무도 모른단 말이오, 내가 알고 있고 당신이 알고 있지 않소?”


하며 돈을 돌려주었다고 한다.
그렇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결국 남도 알게 되고, 우주 법계에도 전달된다. 우리는 모두 한 어머니의 자식이요 한 나무의 잎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마음의 품이 넓어 ‘나’라는 벽이 없이 모두를 위해 마음을 크게 쓰는 대인이 있는가 하면, 자기 하나 밝게 이끌지 못할 정도로 옹색하게 쓰는 이가 있고, 마음을 어떻게 써
야하는 줄 몰라 한 번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죽는 이도 있다. 심지어는 함부로 악의적인 뜻을 품기도 하고 눈이 밝지 못해 본의 아니게 질서를 어지럽히는 이도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마음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내 한 생각이 주위를 살리기도 하고, 오염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생각을 함부로 할 때 가장 큰 피해자는 자신이다. 좋지 않은 생각은 좋지 않은 행동을 낳게 되고 그에 대한 열매 또한 스스로 거둬들이게 돼 있다. 악연이다, 원수다 이름 하는 것도 내가 알게 모르게 뿌린 씨앗의 쓰디쓴 열매일 뿐이다.


다스리기 힘든 마음을 나와 주변을 살리는데 쓰느냐, 마느냐 결정하는 것 역시 자신의 마음이다. 그런데 이 마음을 마음대로, 모두에게 이익 되게 쓰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자동차 하나를 운전하려고 해도 일정기간의 교육을 마치고 시험을 쳐서 면허를 따야 한다. 하물며 보이지도 않고 오랜 습성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마음이야 어떠하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마음을 잘 쓸 수 있을까?
우리 몸뚱이는 과거 업연(嶪緣)으로 인해 선업과 악업으로 이뤄진 밭이다. 선과 악의 인연이 내 안과 밖에서 나를 괴롭히니 몸이 창살 없는 감옥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남을 탓하기에 앞서 내 안의 수많은 자생중생들을 다듬고 다듬어 먼저 제도한다면 제 나무에서 맺은 열매가 두루 익어 나와 남에게 두루 이익을 주는 농사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