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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한마음선원 주지 혜원 스님(조계종 중앙종회의원)돈의 관리자


옛날 어느 조그만 고을에 원님이 부임했다. 그런데 그 원님은 다음 날 시체로 발견됐다.
다음에 부임한 원님도 마찬가지였다. 그 다음 원님도, 또 그 다음 원님도 부임한 다음 날 시체로 발견됐다. 그러자 그 다음부터는 그 고을 원님으로 가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라에서는 방을 붙여 꼭 양반이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원님으로 발령 내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원래 그 고을은 산 좋고 물 좋고 인심 좋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그런데 원님이 내리 죽고 나서부터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고을 관리들은 일손을 놓은 채 우왕좌왕 했고, 그 틈에 도둑들이 설쳐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나갔다.
고을이 완전히 파괴될 즈음, 한 스님이 원님으로 가겠다고 나섰다. 약속한 대로 나라에서는 당장 발령을 냈다.


“쯧쯧, 스님이 벼슬 욕심에 목숨 아까운 줄을 모르시고….”
고을 관리들은 오랜 만에 부임한 원님을 보고도 좋아하기는커녕 혀를 찼다. 그리고는 다음 날 아침 장례 치를 준비를 해서 들어갔는데, 뜻밖에도 스님이 멀쩡하게 살아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에도, 또 그 다음 날에도 스님은 멀쩡하게 살아있었다.


“도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이방이 물었다. 이에 스님은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주었다.

“첫날 와서 잠자리에 들었을 때네. 갑자기 방안 이 구석 저 구석에서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지 뭐겠나. 그래서 가만히 지켜보니까 그것들이 한데 뭉치더니 귀신이 되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전임 원님들은 그 귀신을 보고 놀라 죽은 것이었다.


“그 다음 날에는 빨간 기운이 나와 귀신이 되고, 다음 날에는 노란 기운이 나와 귀신이 됐네. 그리고 바로 어젯밤에는 검은 귀신 ‘빨간 귀신’ 노란 귀신이 한꺼번에 나타났다네. 그러더니 자기들을 좀 풀어 달라는 걸세. 동헌 뒤뜰 살구나무 아래를 파 보면 자기네들이 파묻혀 있다면서.”
스님은 이방 등을 데리고 가서 살구나무 아래를 파보았다. 그러자 항아리 세 개가 나왔다.


항아리에는 각각 금화 ‘은화’ 엽전이 들어 있었는데, 가만히 보니 전임 원님이 모아 파묻어 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정당한 방법으로 모은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백성들의 피를 흘리게 하고, 뒷돈을 챙겨 모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검은 기운과 검은 귀신은 백성들의 시커멓게 타들어간 속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빨간 기운과 빨간 귀신은 백성들의 피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노란 기운과 노란 귀신은 속칭 구린 돈, 즉 뒷돈 챙긴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스님은 돈 뒤에 가려진 숨은 사연을 천도하는 마음으로 돈을 풀어주어 기운을 돌게 해 준 뒤 마을을 떠났다.


돈에도 생명이 있어 따뜻한 곳을 좋아한다. 냉하고 어두운 곳은 싫어하는 게 모든 생명의 본능 아닌가. 돈도 받고 쓰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천차만별의 기운으로 화(化)한다.


이 세상에서 내 것은 없다. 몸뚱이도 마음도 돈도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없으니 나는 다만 그것들의 관리자인 것이다. 어릴 때 꼬마들이 땅에 금을 긋고 온갖 살림을 하다가 엄마가 밥 먹으라고 데리러 오면 미련 없이 훌훌 털고 일어서는 것처럼 우리도 한철 소꿉놀이를 하는 중이다. 언젠가 모든 것을 다 놓고 일어서야 한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다 집착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