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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한마음선원 주지 혜원 스님(조계종 중앙종회의원)/감사의 달


딸문제로 애를 태우던 보살이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가출하기 시작한 딸이 잡아다 놓으면 또 나가고, 잡아다 놓으면 또 나가기를 끝도 없이 반복한다는 것이었다.
그 보살이 어느 날, 멀쩡한 얼굴로 찾아와 들려주는 말이….

 
처음에는 배신감에 눈앞에 캄캄했다고 한다.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저 때문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 싶어서 죽지 않을 만큼 팼다는 것이다. 그런데 며칠 후 딸은 다시 가출을 했다.

그렇게 시작된 가출은 중학교 3학년 때까지 계속됐다. 그 때까지 보살은 때리기도 하고, 온갖 나쁜 예를 들어가며 겁을 주기도 하고,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어떤 방법도 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럴수록 더 반항하고 거슬렸다.
대체 어떻게 해야 딸의 가출을 막을 수 있을까!
당시 보살의 몸과 마음은 온통 그 문제에 매달려 있었다. 그 때 문득 큰스님 말씀이 생각났다. 마음이 오면 몸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그런데 어떻게 해야 마음을 오게 할 수 있을까.
따뜻해야 녹고 낮은 데로 고인다고 했으니 보살은 우선 자신부터 변화시키기로 했다. 괘씸한 마음, 원망스런 마음을 내려놓고 무조건 낮아지기로 했다. 그 방편으로 딸을 향해 절을 하기 시작했다.
딸이 없으니 딸 방에 대고 절을 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딸이 들이닥쳤다. 순간 멈칫하며 돌아보니 묘하게 뒤틀린 표정으로 한심한 듯 보는 것이었다. 또 괘씸한 마음이 불쑥 올라왔지만 ‘너와 내가 둘이 아니다’를 속으로 되뇌이며 다시 자신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 딸을 가졌을 때가 생각났다. 늦은 나이에, 더구나 아이 낳을 상황도 아닌데 갑자기 들어선 아이, 보살은 아이를 지우려고 병원에 갔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이미 지울 시기를 놓쳤으니 그냥 낳으라고 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집에 와서 알고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써보았다. 그러나 열 달 후, 아이는 기어이 태어났고 별 탈 없이 자랐다.

 

그 일이 생각나자 보살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났다. 그 때 딸아이가 얼마나 무섭고 끔찍했을까, 그제야 보살은 진심으로 참회하는 마음이 되더라고 했다.

며칠 후, 오랜만에 들어온 딸이 눈을 맞추며 하는 말이, 집에 들어오는 게 섬뜩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집에만 있으면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것 같아서 있을 수 없었는데, 그 날은 이상하게 오고 싶더라는 것이었다. 와서도 생전 처음으로 편안하게 느껴지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둘이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는 것이었다.

 

이야기 말미에, 보살은 이제 딸에게 원망하는 마음보다는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자칫 모르고 지나갔을 악업의 씨앗을 이생에서 거둘 수 있게 해준 데 대한 감사였다.
이렇게 내 앞에 닥친 모든 경계가 다 공부재료인 줄 안다면 얼마나 감사할까.
사실 나를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인연들 모두가 나의 스승들이다. 때로는 말썽꾸러기 자식의 모습으로, 때로는 병든 부모의 모습으로, 때로는 무능한 배우자의 모습으로 남을 뿐이다.

5월은 감사의 달이다.


감사라는 것은 내 마음이 넉넉해져서 따뜻함이 무르익을때 나오는 찬탄이다.
그래서 봄기운이 완연한 5월에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부처님 오신 날 등 다 놓여졌나보다.

이 모든 인연이 또한 나로 인해 비롯됐으니 특히 내게 감사해야 할 달이다. 그러기 위해 더욱 더 나를 참구하고 내 근본을 참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