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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한마음선원 주지 혜원 스님(조계종 중앙종회의원)/수행으로 밝히는 등

 

퇴직에 즈음해 서구 사람들과 인도 사람들은 그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고 한다.


서구 사람들은 직장에서의 퇴직을 마치 인생의 퇴직으로 생각해 눈에 빛을 잃고 무기력해진다는 것이다. 이제 뭐하고 사나 싶어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반면 인도 사람들은 오히려 눈에 빛이 나고 얼굴에도 생기가 돈다고 한다.
직장에서 퇴직하면 그동안 미뤄두었던 수행을 마음껏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가장으로서 책임감 때문에 정작 자신의 삶은 살지 못했는데 퇴직으로서 모든 의무에서 벗어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동안거(겨울에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집중적으로 수행하는 기간) 회향식에서 여든이 다 된 한 할머니가 신행담을 발표했다. 할머니는 몸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세 시간 이상 자지 않고 정진한다고 했다. 
“거사님(남자 신도를 이름)들도 그렇고 우리 중생들은 낮에는 별로 시간이 없어요. 그러니까 잠을 덜 자고 정진해야 돼요. 엊그제 같이 공부하는 도반이 전화를 했는데, 시부님이 돌아가셨대요. 그 소리를 들으니 정신이 번쩍 나는 거야. 이제는 밤을 새워서 공부를 해도 부족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면서 할머니는 늙으면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기 때문에 제대로 공부할 수가 없다며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부지런히 공부하라고 했다.
사실 나이 들어 공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허리가 아프고 잠이 와서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이 공부는 서른 살 이전에 마치라고 했다. 공부도 힘 있을 때 해야지 육신이 늙으면 정진력도 그만큼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이가 들면 공부 못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늦깎이(늦은 나이에 출가한 스님을 이름)로서 더 열심히 정진해 크게 성취한 스님들도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법관이며 또 법관 출신으로 유명한 효봉 스님이 그렇다. 효봉 스님은 법관 생활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내린 사형 판결로 고뇌하다 출가를 했는데, 스님의 나이 서른여덟 살이었다.


출가 후, 효봉 스님은 스승이신 석두 스님이 내린 ‘돌아다니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서거나, 말을 하거나 침묵하거나, 움직이거나 조용히 있거나 그 모든 것이 다 수행이요, 공부이니 한 순간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뼈를 깎는 수행을 한다. 남보다 늦게 출가한 까닭에 남들이 쉴 때도 쉬지 않고 잠잘 시간에도 잠자지 않으면서 분발했다. 한번 앉으면 절구통처럼 움직일 줄 모른다고 해 ‘절구통 수좌(首座)’라는 별명도 붙었다. 오죽하면 엉덩이가 짓물러서 진물이 흘러 내려도 움직이지 않았을까. 


그러나 속세의 공부처럼 절집의 수행은 쉽게 되지 않았다. 5년 동안 정진을 해도 별다른 소득이 없자 스님은 마흔네살 되던 해에 토굴을 짓고 용맹정진에 들어간다. 깨닫기 전에는 죽어도 나가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며 정진하기를 1년 6개월, 마침내 삭발한 이후 한순간도 놓지 않았던 무(無)자 화두를 깨치게 된다.
음력 4월 8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이날 불자들은 부처님 은혜에 감사하며 등을 단다. 또 나를 밝히고 전체를 밝히고자 등을 단다. 


그러나 등은 이 날 하루만 다는 것이 아니다. 매순간 우리는 등을 달고 불을 밝힌다. 부처님 은혜를 갚고자, 부처님처럼 살고자 한순간도 놓치지 않는 수행 정진으로 등을 달고 불을 밝힌다. 나이도 잊고 생사도 잊은 수행 정진,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등을 밝히는 일이며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