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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한마음선원 주지 혜원 스님(조계종 중앙종회의원)/자비심

미국의 한 자연주의 철학자는 인간이 가진 유일하고도 가장 훌륭한 덕성이 ‘자비심’이라고 했다.  자비심은 상대를 자기와 둘로 보지 않는 마음인 측은지심이며 인욕과 관용, 배려하는 마음 모두를 포괄하는 마음이다.   


‘자기보다 강한 사람 앞에서 참는 것은 두렵기 때문이요, 자기와 동등한 사람 앞에서 참는 것은 싸우기 싫어 참는 것이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 기꺼이 참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큰 힘을 가진 자라 할 수 있다’(잡아함경)고 하셨던 부처님의 말씀처럼 두려움이나 부담 때문에 참게되는 경우는 흔하다. 하지만 상대를 누를 수 있는 힘과 지위가 있는데도, 참기는 쉽지 않다. 나아가 상대를 측은히 여기기는 더욱 어렵다.


그래서 자비를 인간이 지닌 가장 훌륭한 덕목으로 꼽은 것이 아닐까 싶다.
이 포괄적인 마음 가운데 일부인 약간의 인내와 최소한의 친절만으로도 삶은 훨씬 편안해질 것이다.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성격이 거칠고 잔인해 자비심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제바달다라는 자가 있었다.
그의 이런면으로 인해 대중들이 불편을 겪는 것을, 부처님께서 신통으로 아시고는 “비구들이여, 제바달다가 무자비한 것은 지금뿐 아니라 전생에도 그러했다.” 고 하시며 그의 전생에 대해 대중들에게 다음과 같이 들려주셨다.


그 옛날 바라나시에서 브라흐마닷타 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설산 지방에는 몸집이 크고 아름다운 코끼리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8만 마리의 코끼리를 거느리고 있었다.
암 메추리가 떼지어 가는 코끼리로부터 새끼를 보호하려 코끼리 우두머리에게 새끼의 보호를 청했다.
그러자 그 코끼리는 새끼의 보호를 약속하면서 맨 뒤에서 혼자 오고 있는 코끼리가 있는데 그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않으니 그가 오거든 간청하여 새끼를 보호하도록 하라고 했다. 얼마 뒤 그 코끼리를 만난 메추리는 새끼를 해치지 말아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그는 “너는 힘이 약하니 나에게 어떻게 하리. 너 같은 것 백 천만 마리 있어도 내 왼발로 밟아 죽일 수 있다”면서 일부러 짓밟고 지나가 버렸다. 죽은 새끼를 품고 한없이 울던 메추리는 “어디 두고 보자. 며칠 못 가 너는 죄 값을 치를 것이다. 너는 육체의 힘보다 지혜의 힘이 더 큰 줄을 모를 것이다. 나는 그것을 너에게 가르쳐주리라.”하고 원한을 품었다.


메추리는 까마귀와 쉬파리, 개구리를 차례로 찾아 문안을 드리고 정성껏 받든 후 코끼리에게 복수해줄 것을 간청했다.
그러자 메추리의 부탁대로 까마귀는 코끼리의 눈을 쪼았고, 쉬파리는 그 눈에 알을 낳아 구더기가 들끓게 했으며, 개구리는 괴로워 날뛰다 목이 타는 코끼리를 벼랑으로 유인해 마침내 떨어져 죽게 했다.  


쓰러진 자에게 짐을 얹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제바달다의 전신인 코끼리에게 자비심까지는 아니더라도 배려하는 마음이 조금만 있었더라도 남과 자기를 그렇게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 수해 때를 기억할 것이다. 전국 곳곳에서 시름에 잠긴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 때 이들을 돕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어장이 태풍에 휩쓸리는 바람에 망연자실해 있는 어민은 아랑곳 않고 인근 바다로 흩어져버린 고기들을 잡으려고 낚시도구와 양동이를 들고 몰려든 사람들도 있었다. 남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부러 어려운 사람을 찾아서 봉사하는 것도 좋겠지만 늘 만나는 주변인들에게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고, 해야할 것은 하고 하지 말아야할 것은 하지 않는 원칙만이라도 지켜서 살아간다면 서로에게 편안한 삶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다.         
사회를 밝게 하는 것도, 개인이 행복해지는 것도 결코 닿을 수 없는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닌, 지금 바로 옆 사람에게 행할 수 있는 ‘친절’이면 족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