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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한마음선원 주지 혜원 스님(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일체 만물만생에 감사하는 날

어느 날 저녁, 청년법회 소속의 남녀 법우 한 쌍이 찾아왔다. 결혼을 앞두고 인사하러 온 것이었다.
그 예비부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질 즈음, 둘이서 무언가를 놓고 쑥스러운 듯 실랑이를 하면서 서로에게 미루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결국 여자 법우가 가방에서 봉투 두 개를 꺼내 놓으며 하는 말이 “스님, 결혼을 앞두고 보니 많은 걸 생각하게 되고, 많은 것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저를 이만큼 키워주시고 가르쳐 주신 저희 부모님과 또 남자친구를 이만큼 키워주시고 가르쳐 주신 남자친구 부모님께 눈물겹도록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혼하기 전에 양가 부모님들을 위해 부처님 전에 감사의 회향(回向 모든 공덕을 일체제불과 일체중생에게 돌림)을 하고 싶습니다. 부디 양가 부모님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써 주십시오.” 하는 것이었다. 겉모습은 요즘 흔히 보는 젊은이들과 다를 바 없는데 마음 쓰는 것은 어찌 그리 지극한지, 참으로 대견했다.


사실 요즘 사람들이 예전에 비해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마음은 더 각박해졌다. 실질적인 이익이 없으면 친구 관계, 스승 제자 관계, 부모 자식 관계조차 파괴하는 세상이니, 청년 법우들의 마음이 한층 더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은혜를 알고 그 은혜를 갚고자 하는 마음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추석이 지났다. 추석은 만물만생에게 감사하는 날이다. 즉, 부모님께 감사하고, 조상님께 감사하고, 이웃에 감사하고, 지수화풍에 더불어 감사하는 날이다. 이들의 수고와 이들의 작용이 없었다면 어찌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겠는가. 이 감사한 마음을 회향하는 날이 바로 추석인 것이다. 있으면 있는 대로 햇곡식과 햇과일을 차려놓고, 또 없으면 없는 대로 초 한 자루 켜놓고, 물 한 그릇 떠놓고, 향 한 개비 피워놓고, 정성껏 마음의 공양을 올리는 날이다. 이와 같은 지극한 마음으로 감사의 절을 올린다면 일체조상과 내가 하나 되고, 일체중생과 내가 하나 되는 한마음 한 자리가 될 것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감사한 마음보다 귀찮다는 생각으로 추석을 맞는 것 같다. 특히 여자들은 음식 만들고 손님 접대하는 것을 힘든 가사노동으로만 생각하여 명절만 다가오면 우울증 증세까지 나타낸다고 한다. 또 남자들은 남자들대로 현대 사회에 맞지 않는 풍습이라 생각하고 무시한다고 하니, 조상에 대한 감사함을 모른다면 어찌 자식들한테 감사함을 가르칠 수 있으며, 은혜를 베풀 수 있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몸뚱이만 귀한 줄 알고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줄 아는데, 나무가 겉습만 좋아서 될 일이 아니다. 뿌리가 썩어 들어간다면 언젠가는 겉모습도 썩을 것이요, 결국에는 나무 전체가 쓰러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와 조상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한 뿌리 한 나무임을 알고, 뿌리에 물주고 공들이는 것이 결국 내게 물주고 공들이는 것이며, 나아가 자식들에게 물주고 공들이는 것임을 알아야겠다.
부처님 법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생활이 곧 부처님 법이요, 부처님 법이 우리들의 법이다. 육신이 태어났으면 정신도 태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진짜 사람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