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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한마음선원 주지 혜원 스님(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일체 경계와 하나가 되는 것

 

부처님의 아드님이며 십대 제자 중 한 분인 라훌라 존자는 ‘밀행제일((密行第一)’로 알려져 있다. 밀행제일이란 남의 눈에 띠지 않는 데서도 스스로 행할 바를 실천하는 데 최고라는 뜻이다. 실제로 라훌라 존자는 남이 보지 않는 데서도 철저하게 계율을 지키고 인욕(忍辱 고통과 욕됨을 참는 것)을 실천했다고 한다.


그런 라훌라 존자가 처음에는 거짓말도 잘 시키고 장난도 심했다고 하는데, 부처님이 계시냐고 물으면 계실 때는 안 계시다고 하고, 안 계실 때는 계시다고 했다는 것이다. 또 계신 곳을 물으면 엉뚱한 곳을 일러주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출가한 탓도 있었겠지만 부처님 아들이라는 후광을 단단히 믿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이 사실을 아시고 라훌라에게 발 씻을 물을 떠오게 하셨다.
발을 다 씻으신 후,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라훌라야. 너는 이 물을 마실 수 있겠느냐??
“마실 수 없습니다.”
라훌라가 대답하자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왜 마실 수 없느냐?”
“발을 씻은 더러운 물이기 때문입니다.”
“너도 이 물과 같지 않느냐. 출가를 했으면서도 삼독(三毒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에 물든 마음을 닦는 대신 거짓말이나 일삼고 있으니 네 마음과 이 물이 다르지 않구나.”
부처님께서 물을 버리게 하신 후, 다시 물으셨다.
“라훌라야, 너는 이 그릇에 음식을 담을 수가 있겠느냐?”
“아닙니다. 이 그릇에는 음식을 담을 수가 없습니다.”


“왜 담을 수가 없느냐?”
“음식은 깨끗한 그릇에 담아야 하는데, 이것은 발을 씻은 더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도 이 그릇과 같지 않느냐. 출가를 했으면서도 수행에는 뜻이 없고, 거짓말을 일삼아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으니 마음의 양식을 담을 수 없는 더러운 몸이 되었구나.?
부처님께서 그릇을 깨뜨려 버리신 후, 다시 물으셨다.
“라훌라야, 저 그릇이 아깝지 않으냐?”
“별로 좋은 그릇이 아니고 이미 더럽혀진 그릇이기 때문에 아깝지 않습니다.”
“너도 저 그릇과 같지 않느냐. 출가를 했으면서도 거짓말로 사람들을 골탕 먹이며 즐거워했으니 아무도 너를 사랑하지 않고, 저 그릇처럼 깨어져도 아까워하지 않게 되었구나.”


부처님의 꾸중에 라훌라는 그날부터 수행에 힘쓰기 시작했다. 특히 남이 보는 데서나 보지 않는 데서나 계율을 범하지 않고, 인욕을 실천하여 마침내 밀행제일이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다.
원래 계(戒)는 규칙을 지키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것을 말하며, 율(律)은 교단의 강제적 규칙을 말한다. 즉, ‘계’는 자율적인 도덕과 같으며, ‘율’은 타율적인 법률과 같다. 그러나 수행자라면 남의 눈에 띠지 않는 데서도 스스로 행할 바를 실천해야 하므로 ‘율’이 곧 ‘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인욕도 마찬가지이다. 남이 본다고 해서, 혹은 수행을 한다고 해서 일어나는 마음을 꾹꾹 눌러 참는 것이 아니다. 역경계건 순경계건 오직 놓는 것이 인욕이요 수행이다.


라훌라 존자가 밀행제일이라 일컬어진 것은 결코 남이 보지 않는 데서도 계율을 잘 지키고 인욕을 실천했기 때문이 아니다. 일체를 내 아픔같이 생각하고, 내 몸같이 생각하여 놓고 또 놓아 마침내 일체 경계와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다 보면 계율을 지킨다는 생각, 인욕을 실천한다는 생각을 떠나서 생활이 곧 계율이 되고 인욕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