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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한마음선원 주지 혜원 스님(조계종 중앙종회의원)생쌀 받았으면 밥 해 내놓을 줄 알아야

인간은 필연적으로 공생의 삶을 살게 돼있다. 따라서 알게 모르게 은혜를 입고 은혜를 베풀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때로는 본의 아니게 배은망덕한 일을 저지르며 살기도 한다. 배은망덕한 일이 특정한 사람들만 저지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솝 우화 가운데 포도넝쿨 덕에 몸을 숨겨 사냥꾼들에게서 목숨을 건진 사슴이 있었다. 사냥꾼들이 지나가자 안심한 사슴은 포도넝쿨을 따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넝쿨이 흔들리면서 소리가 났다. 소리를 들은 사냥꾼들은 다시 와서 사슴을 잡았다.


이때 사슴은 “이건 당연한 결과다. 나를 살려준 나무를 해쳤으니 벌을 받은 것이다” 라며 탄식했다. 사슴처럼 입장이 바뀜에 따라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일이 살면서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해를 입혀 도와준 이를 곤란하게 한다든가 도와준다는 것이 오히려 화를 부르기도 한다. 자기의 실체를 밝게 알지 못하는 탓에 사람들은 맹목적인 자기 보호본능을 갖게 된다. 이 자기애가 서로 충돌할 때 서로 미워하게 되고 원한마저 품게 된다.


옛날 부처님 전생의 일이다. 바라문의 집에 아들로 태어났는데 태어나면서부터 곱추였다. 머리가 영특한 그는 유학을 가서 학문과 기예를 익혔다. 그리하여 마침내 소취궁 박사라고 불리게 됐다. 하지만 외모 때문에 왕이 자신을 써줄 것 같지 않자 외모는 출중하지만 천한 일을 하고 있는 젊은이를 술사로 내세워 그의 제자처럼 행세하고 궁에서 왕을 도왔다. 바라문은 뒤에서 나라의 어려운 일을 훌륭히 해결해나갔다. 그러자 젊은이는 이로 인해 상도 받고 권력도 얻게 됐다. 그는 점차 바라문을 업신여기며 교만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당신 덕에 사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한 낫 수행인에 불과하오.”
그런데 얼마 후 적국의 왕이 쳐들어왔다. 왕은 젊은이를 믿고 싸우고자 했다. 그런데 적국의 북소리가 사방에서 좁혀들자 겁에 질린 그는 혼비백산해 코끼리 등에 오줌까지 쌌다. 이 때 걱정이 돼 그를 뒤 쫓아온 바라문은 그를 안심시키고 자신이 직접 돌진해 적의 왕을 사로잡아 돌아왔다. 몹시 기뻐한 왕은 바라문에게 큰 영예를 주었고, 사람들에게 소취궁 박사로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바라문은 자신을 배반하고 업신여긴 젊은이에게 살아갈 재산을 주어 집으로 돌려보냈다.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그 은혜를 감추거나 갚지 않는 것도 배은망덕이지만 잊는 것은 더욱 큰 배은망덕이다.


이런 배은망덕한 일을 당하는 순간 억울하고 분하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자란 바라문처럼 배은망덕한 행위조차 복수심으로 대하지 않는다.
현자란 대자비의 사상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바라문은 현자로서 젊은이에게 복수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깨우치게 하는 자비를 베풀었다. 비록 남이 나를 배반할지언정 이를 이유로 내가 복수를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그 아픔이 크다 해도 복수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선원의 공사를 할 때의 일이다. 목소리를 높이면 보상금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듯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사나운 언사를 늘어놓고 가는 이들이 있었다. 혈기 왕성한 젊은 스님들은 속이 반히 보인다며 어이없어했고 한 두 사람은 단호한 태도로 이에 맞서려 했다. 어느 날 큰 스님께서 이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얘. 쌀을 받았으면 밥을 해서 내놓을 줄 알아야지. 그래 생쌀을 그냥 내놓느냐.” 이는 비록 상대가 부당하다 해도 이를 그대로 되받아치는 것은 아무 공덕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뾰족하고 거친 마음을 받았을지라도 내 마음으로 부드럽고 지혜롭게 요리해 상대의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할 때 당장은 아니더라도 좋은 생각이 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고, 그런 계기를 현자는 차단시키지 않는다는 뜻인 것이다.
살다보면 억울한 일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바람이 분다고 그때마다 함께 흔들릴 수는 없는 일이다. 날이 추워지고 있다. 상대가 아닌 나부터 생쌀을 밥을 지어 내어놓을 때 누군가의 추운 가슴에 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