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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주의 지구촌 기행>
다니족을 찾아서 (1)

Journey to the stone age 다니족을 찾아서 (1) 김 동 주/ 김동주치과의원 원장 www.drkimsworld.com E-mail:drkimdj@yahoo.com drkimdj@korea.com 여행이란 일상생활에서 겪어보지 못하는 여러가지를 경험하게 해 준다. 사람도 그렇고 언어,음식,주거생활등 새롭고 낯설은 세계를 찾아나서는 것이 여행의 즐거움이다. 때로는 즐겁고 쾌적한 여행도 되지만 어떤 여행에서는 괴로움과 고통 이 동반하는 여행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것이 새로운 경험을 맛 본다는데 공통점이 있으며 여기에 치르는 댓가가 크면 클수록 그 여행의 의미가 더욱 값지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지구에서 그린랜드 다음으로 큰 섬인 뉴기니아섬이 적도 바로 아래에 동서로 2400KM 남북으로 740KM에 걸쳐서 자리잡고 있다. 그중 동쪽 반은 독립국가인 파푸아 뉴기니이며 서쪽 반은 이리안자야로서 인도네시아 영토에 속한다. 이리안자의 한복판에는 아직도 석기시대의 원시적인 생활을 하고있는 다니족이 살고 있다. 다니족이 살고있는 발리엠계곡은 길이가 60KM, 폭이 16KM에 이르며 해발 1500M 가 넘는 고지대에 있다. 주변은 험한 산악지대과 울창한 열대우림으로 둘러 쌓여 외부와는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발리엠계곡의 다니족이 처음으로 외부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83년 미국의 탐험가 ARCHBOLD에 의해서 였다. ARCHBOLD가 이 지역을 발견하기 전에도 네덜란드 탐험대가 이 근처를 지나갔지만 험한 지형때문에 빗겨갈 정도로 접근하기가 힘든 곳이었다. 내가 1993년에처음 이 지역을 찾아갔을 때만 해도 산허리에 짙게 걸친 구름층을 뚫지 못하여 두차례나 되돌아와 자야푸라의 센타니공항에서 이틀이나 발이 묶이기도 하였다. 이곳을 수상비행기로 비행하다 발견한 ARCHBOLD는 네덜란드인 TEERINK와 탐 험대를 조직하여 이곳에 첫 발을 내딛게 된 이래 많은 탐험대들이 이곳을 찾게 되었고 제 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탐험대를 대신하여 선교사들이 찾아들게 되었다. 발리엠계곡에서 바깥세상으로 통하는 길은 아직도 이리안자야의 수도인 자야푸라와 발리엠계곡의 와메나를 잇는 항공로가 유일한 교통 수단이다. 와메나 는 발리엠계곡의 중심이며 소형여객기가 이착륙 할 수 있는 짧은 활주로가 있다. 발리엠계곡은 길이 60KM, 폭이 16KM에 이르는 넓은지역이다. 위도상으로는 적도 바로 아래의 열대지방이지만 습도는 낮고 해발 1700M의 고지대에 있어서 밤에는 기온이 급히 떨어져 한기를 느끼게 된다. 다니족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이들의 옷차림이다. 옷차림이란 표현이 어울리지 않게 이들은 거의 나체로 지낸다. 남자는 호림 또는 코데까라고 불리는 기다란 대롱을 성기에 꽂아서 그 끝을 실로 묶어 허리에 매달고 다닌다. 여자들은 밀짚으로 만든 치마를 입고 있을 뿐이다. 아니 입는다는 표현보다는 아슬아슬하게 엉덩이에 걸친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남녀 모두 우리들 시각으로 보면 매우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남자들의 유일한 장식구인 코데까는 박종류에 속하는 과실로서 그 속은 파먹고 속이 넓은 것은 물통으로 사용하며 가늘고 기다란 것을 코데까용으로 사용한다. 공기가 찬 밤에도 그대로 잠을 자며 몸의 체온을 보호하는 것이라고는 전혀 없다. 선교사들이 발리엠계곡에 들어와 선교를 한지 30년이 지나고, 외부문명이 도입되어 가장 외부영향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는 와메나에는 많은 다니족들이 옷을 입기 시작 했지만 아직도 코데까 차림으로 마을을 활보하고 다니는 다니족은 전혀 외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는것 같았다. 와메나에서 외곽으로 갈수록 옷을 입은 다니족은 줄어든다. 와메나에서 약 20KM 떨어진 곳에 지위카라는 마을에 들르면 “무미”라고 불리는 미이라가 있다. 다니족 청년의 안내로 지위카마을에 도착하니 마을의 원로가 다가와 “와, 와”하며 악수를 청하는 폼이 벌써 이 마을은 외지사람한테 많이 시달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니족과의 대화는 와메나공항에서 소개받은 포터 겸 가이드인 다니청년을 통하여 영어로 하는데 FREDY 라는 이 청년은 선교사한테 영어를 배워 매우 유창한 영어를 하였지만 읽고 쓰는것은 매우 서투르고 사고방식이 단순하여 폭넓은 대화는 할 수 없었다. 지위카마을은 이 미이라를 보기 위하여 많은 여행객들이 들르는 곳으로 미이라를 보기 위해서는 기부금을 내 놓아야 한다. 다니족은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원칙으로 하지만 마을에 큰 공헌을 한사람이나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사람은 화장을 않고 미이라로 만들어 마을의 수호신으로 삼았는데, 이들의 조상인 무미는 요즘에는 후손의 수입에 큰 보탬을 해주어 개방된 사회에서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마을을 수호해 주는 셈이 되었다. 발리엠계곡에는 지위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