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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삶/허영엽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실장]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 할머니

사제 서품을 받고 첫 보좌신부 생활을 시작한 것은 수유동 성당이었다. 본당에 부임해서 처음으로 한 일은 환자방문이었다. 가톨릭에서는 성당에 올수 없는 환자의 집을 방문해서 기도하고 영성체(領聖體)를 드리는 것을 봉성체(奉聖體)라고 한다. 봉성체를 나가는 날은 점심시간을 거르기 일쑤이고, 경험이 부족한 나는 바쁘게 허둥대기만 하고 마음만 급하게 되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봉성체를 나가 오후 시간이 되면 몸이 피곤해졌다. 그러나 환자들을 막상 만나게 되면 이상하게도 사소한 고통은 말끔히 사라졌다. 이루 말 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사제를 맞이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천진스런 미소가 큰 힘을 주었다.


그때 어렴풋이나마 사제의 존재가 다른 이들에게 조그만 기쁨이라도 줄 수 있다는 것이 몹시 기뻤다. 그리고 여러 번 만나게 되니까 그분들과 농담도 건네고, 집안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환자 몇몇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 그분들의 장례미사를 집전하고 영구차를 떠나보낼 때는 마치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가 세상을 떠난 것 같은 허전함에 몰래 눈시울을 적셔야 했다.
환자 방문하던 분들 중에서 여러 분이 돌아가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한 분 계시다. 중풍으로 십여 년 이상을 누워 계신 할머니였다. 내가 그분을 처음 뵈었을 때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몰골이 찌그러져 계셨다. 말씀도, 한참이나 입을 움직여야 겨우 몇 마디 하실 뿐이었다. 더 가슴 아픈 일은 할머니댁을 들어서는 순간 그분은 그 집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분은 10년 동안이나 미사는 물론 신자들과의 만남도 할 수가 없었다. 성당 가까이에 사시면서도 성당이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고 외부와는 완전히 단절되어 사셨던 것이다. 다행이 옆집으로 신자가 이사를 오게 되어 성당에 연락이 닿았다.


십년 만에 신부와 수녀, 그리고 신자들을 보자 할머니는 목놓아 서럽게 울기 시작하셨다. 그러고는 드디어 십년 만에 고해성사를 보시고, 영성체를 하시고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셨다. 봉성체를 끝내고 돌아오려는 나에게 할머니는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하셨다.
“신부님, 다음에 오실 때 요구르트 한 개만 사다 주세요. 먹고 싶은데 자주 이불에 소변을 본다고 어멈이 사다주질 않아요…"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의 그 말이 나의 가슴을 무척 아프게 때렸다. 나는 한달에 한번 봉성체를 할 때마다 요구르트를 한 개씩 몰래 사다드렸다. 그러면 어린아이처럼 웃으면서 요구르트를 한 번에 마셨다.


그런던 어느날 그 할머니의 동네에 사시는 신자가 찾아와 그분이 위독하니 병자성사(病者聖事)를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해성사를 듣고 이마와 손에 기름을 바르고 마지막 병자성사를 드렸다. 병자성사가 끝나고서 할머니는 꼬깃꼬깃 접은 만원짜리 지폐 한 장과 오천원짜리 두장을 내 손에 쥐어주셨다. 나는 깜짝 놀라며 “왜 이 돈을 저에게 주십니까?" 하고 여쭈었다. “이젠 나에겐 이것이 필요 없어요. 신부님이 가지고 계시다가 불쌍한 사람에게 써주세요" 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사제관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지금 외롭게 죽어가고 있는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어쩌면 내 주머니에 있는 이만원은 그분이 가진 소유의 모든 것이었으리라.” 나는 이 세상에서 그분이 가장 부유한 할머니라고 생각했다. 그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장례미사 때 손자가 들었던 젊은 시절의 할머니 사진에서 나는 인생의 허무함을 느꼈다.
할머니는 젊었을 때 무척 고운 얼굴을 가지셨던 것 같았다. 나는 지금도 할머니가 남기고 가신 때묻은 지폐, 이만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강의때나 신자들을 만날 때 가끔 그 돈을 보여주고 그 할머니 이야기를 해준다. 그러면 인생의 가장 값진 교훈으로 천상에 계신 할머니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처럼 느껴진다. 나의 기억속에 그분은 세상에서 가장 부자인 할머니로 아주 오래도록 남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