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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삶- 허영엽 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실장]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오 5,3참조)라는 말씀은 그리스도교의 대헌장이라고 할 수 있는 산상수훈(山上垂訓)에서 나오는 가르침이다. 산상수훈이라는 표현은 예수께서 산위에서 가르쳤다는 데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는 보통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 한다”고 하는데, 하늘나라는 세속적인 땅이나 영토적인 개념이 아니다. 예수께서도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너희는 회개하라”고 말씀하셨다. 즉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다스림, 바로 하느님 자신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하느님을 소유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했는데, 그리스어에서 ‘가난’을 나타내는 말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부유하지는 못해도 극빈은 아닌 사람을 말한다. 둘째는 절대적인 극빈을 뜻하는 가난이 있다. 이 말은 너무 가난하여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안 되는 빈궁을 뜻한다.


예수께서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라는 표현은 절대적인 극빈을 의미한다. 즉, 복 있는 자는 절대적으로 빈곤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말씀이다. 물질적으로 빈곤한데 어떻게 행복하다는 것인가? 그런데 성서에서 언급되는 이 가난이라는 말은 오직 하느님께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말한다. 가난한 사람은 어떤 영향력이나 권력이나 특권을 가지지 못하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억압을 당한다. 그래서 전적으로 하느님께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보통 능력이 있거나 힘이 있는 사람은 하느님보다는 자신의 능력에 의존하기가 쉽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세상의 소유와 능력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의 절대적인 무능력을 알고 그렇기 때문에 전적으로 하느님께만 의지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람은 권력이나 돈이나 세상 것들은 무엇이든지 있다가도 없어지고 말기 때문에 그것에 의존하지 않는다. 하느님만이 도움을 주실 수 있고 희망과 힘을 주실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되다”고 하신 것이다.


물질적인 가난 그 자체는 좋은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도 모든 사람이 잘살게 되기를 바라셨고 또 병자를 보면 고쳐주시고 베고픈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께서 하신 일을 대신해서 모든 사람이 가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또 의료사업을 통해 병을 고쳐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질적인 가난이 행복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람이 물질적으로 너무 가난하면 오히려 물질의 노예가 되고 사람답게 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마태오 복음에서 말하는 가난이란 ‘마음의 가난’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간이 자기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오직 하느님께만 그 도움과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하느님 앞에 순종하고 무릎을 꿇는 마음의 자세이다. 예수는 이러한 가난한 마음이 복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참된 행복은 물질적인 빈곤이나 물질적인 가난이 아니다. 가난 그 자체는 오히려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다. 어떤 경우에도 하느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