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4 (월)

  • 구름조금동두천 26.7℃
  • 구름많음강릉 24.5℃
  • 구름많음서울 27.0℃
  • 흐림대전 27.8℃
  • 구름많음대구 30.2℃
  • 구름많음울산 27.0℃
  • 흐림광주 27.1℃
  • 흐림부산 23.9℃
  • 흐림고창 24.7℃
  • 흐림제주 26.8℃
  • 맑음강화 24.9℃
  • 구름많음보은 27.9℃
  • 구름많음금산 26.2℃
  • 흐림강진군 28.0℃
  • 구름많음경주시 31.8℃
  • 흐림거제 23.9℃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종교칼럼 -삶- 허엽엽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실자]노아는 술주정꾼?

창세기를 잘 모르는 사람도 노아의 방주는 한번쯤 들어본 이야기입니다. 성서에 보면 당시의 사람들은 죄에 물들어 하느님도 수습하기가 곤란했던 모양입니다. 하느님께서 홍수로 한 번에 쓸어버리려고 마음 먹으셨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노아는 의인이었고 하느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성서에서는 노아는 의인이며, 흠없는 사람이었고 하느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라 칭찬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6, 9 참조) 그래서 하느님은 노아만은 살려두고 싶어하셨습니다.
“노아야, 악한 이 세상을 홍수로 멸망시키려 한다. 너는 큰 배를 만들어 너희 가족과 모든 동물들의 암수 한 쌍씩을 배에 태워라.”


노아는 하느님 말씀대로 산꼭대기에 배를 만들었습니다.
“산 꼭대기에 배를 만들다니, 저 노아 영감, 날씨가 더워서 미친 것 아니야?”
드디어 대홍수가 닥쳐오고 세상은 물에 잠겨 버리고 노아와 가족들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의인인 노아도 죄를 짓고 실수를 저지릅니다. 홍수가 끝난 후 노아는 산기슭을 개척하여 포도밭을 일구며 농사를 지었습니다. 노아에게는 세 아들 즉 셈, 함, 야벳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함이 장막 안에 들어가 보니 아버지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서 벌거벗고 있었다. 밖으로 나온 함은 셈과 야벳에게 아버지 흉을 보며 빈정거렸습니다.


“아버지가 이젠 술주정에 옷까지 모두 벗고… 창피해서 어디 얼굴을 들고 다니겠나….”
이처럼 의인이었던 노아도 술에 취해 추한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준 것이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셈과 야벳, 두 아들은 아버지의 추한 모습을 보지 않고 뒷걸음쳐 들어가 옷을 입혀드렸습니다. 사실 두 아들의 심정도 함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함은 겉으로 흉을 보았고, 다른 두 아들은 마음속에 묻어둔 것뿐입니다. 술에서 깨어난 노아는 자기를 흉보았던 함에게 저주를 내리는 잘못을 저지릅니다.


사실 주사가 심한 아버지를 둔 자식들의 고통은 당하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상상도 하기 어렵습니다. 자주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게 되면 가족관계는 미움과 불신이 생겨 파괴되기 마련입니다. 술주정도 여러 가지이지만 노아처럼 벌거벗은 몸을 자식들에게 보이는 것은 심한 술주정이 아니었을까요? 하느님의 은혜를 받고, 의인으로 칭송받은 노아가 왜 이렇게 변했을까? 과거의 모습은 어디가고 비웃음을 사는 술주정뱅이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이가 들어 이제 노망이 들었단 말인가? 그러나 우리는 노아도 보통 사람, 한 인간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노아가 긴장감이 풀렸거나, 시간이 흐르면서 교만해진 것은 아닐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의인이란 죄를 전혀 짓지 않는 완전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와 잘못을 저지르고 살지만 하느님과 함께 살려고 노력하고 회개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아도 늘 한결같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인간이기에 때로는 흐트러지고 망가지기도 했을 것입니다. 화도 불같이 내고 욕설도 서슴지 않는 그런 보통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노아는 우리에게 더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어떤 사람도 완전한 존재는 없습니다. 다만 완전을 향해, 때로는 성공과 실수를 반복하면서 노력하는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의인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