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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삶- 허엽엽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실자]용서하는 사람


인간이 할 수 있는 행동중에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일까?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아닐까?
나를 배신하고 나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준 사람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하여라”는 성서의 말씀은 무슨 뜻인가? 과연 그것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물론 일곱 번이라는 숫자는 상징적인 뜻을 포함하고 있다. 즉 어떠한 조건이나 한계가 없는 무한한 용서를 의미한다.


주의 기도에서는 하느님의 용서를 받은 사람은 겸손되이 다른 이의 잘못을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실제로 다른 이를 용서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성서에도 용서는 인간의 행위가 아니고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했다. 인간적인 능력으로는 완전한 용서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용서하는 것은 사랑하기보다 훨씬 더 어렵다.
조용필이 부른 ‘Q"라는 노래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너를 용서 않으니 내가 괴로워 안되겠다/ 나의 용서는 너를 잊는 것/ 너는 나의 인생을 쥐고 있다 놓아 버렸다/ 그대를 이제는 내가 보낸다.…"


용서를 할 수 없어 잊어버리겠다는 것이다. ‘화라’는 것은 내겐 정말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 그 일에 마음을 지나치게 많이 빼앗길 경우에 생긴다.
인간은 고통을 당할 때 자신의 반응을 조절할 줄 아는 능력이 성숙한 사람에게는 중요하다. 용서를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며 능력이다.
용서를 하지 못하고 원한을 마음속에 쌓고 사는 사람은 그 자신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고 수명까지 짧아진다고 한다.


상처를 준 사람을 무조건 생각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이 결코 용서가 아니다. 왜냐하면 어느 순간에는 상처받은 것이 생각이나서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완전한 용서란 자신에게 평화를 주어야 한다. 우리의 마음에 상처를 남긴 사람을 용서하는 일은 힘든 일이지만 반대로 유익함이 크다. 무엇보다도 인간을 고통스런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로 향할 수 있게 한다.


내가 다른 이를 절대로 용서하지 못한다고 생각이 들 때 우선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과연 나는 다른 이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와 고통을 주고 살았는가?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또한 내 주위에 많은 사람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혔는지를 솔직하게 반성해야 한다.
용서는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겸손한 마음을 지닌다. 나는 잘못이 없지만, 동정과 사랑으로 내가 너를 용서한다는 마음을 지닌다면 그것은 교만한 생각이다.
용서는 단순히 잊어버리거나, 상처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잘못한 것들을 생각하고 다른 이에게 받은 지극한 사랑을 기억하며, 그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또한 나와 너, 우리 모두 약하고 죄많은 인간임을 겸손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용서할 수 없을 때도 많다. 그러나 내가 용서하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바로 그 마음이 중요하다. 그러한 노력가운데 다른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와 용기가 생겨난다.
그리고 용서할 대상은 꼭 다른 사람만일까. 아니다. 때로는 내가 나를 용서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어쩌면 먼저 자신을 용서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